<계룡지를 떠나며>
푸른산을 담은 저수지의 비단결 치마폭을 들치면 물속에 잠긴 깊은 산은 미동도 하지 않는데 처음 듣는 생소한 마을 이름이지만 그 곳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산다는 이유로 이미 생경한 마을도 낯설지 않게 바라봐집니다 큰 산맥처럼 가로 놓여져 있어도 마음의 변두리를 도는 굽은 길들이 가뭇합니다 작은 분교가 있는 느티나무 고목의 삼거릴 지나고 색색의 백일홍과 과꽃이 정다운 마을길을 들어서자 기억하는 내 유년의 모든 추억을 돌이킬 것 같은 반가운 마음에 울타리처럼 가로막힌 산맥을 오르락 거렸습니다 애당초 그곳을 여행의 목적지로 정했을 땐 그 고장의 산세와 볼거리를 따지고 잠시나마 마음의 휴양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막연히 낯선곳에서 만나는 이벤트같은 새로운 인연의 반가움으로 설레어 보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만나서 실제를 확인하고 상대방의 겉과 속내를 더 들여다 보며 더욱 친숙해 질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살면서 참 많은 인연이 바람처럼 스치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사이버상에서 알게 된 인연들이 그러합니다 익명의 섬처럼 내 상상의 바다에 부표처럼 떠 있어 많은 것을 모르면서도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은 환상으로 가끔은 그 익명의 섬을 찾고 싶어지는 마음도 생깁니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단지 내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인연으로 만족해도 되는 데 쉽게 알 수 있다는 편리함에 상대방의 마음도 모른 채 아는 척 하는 결례를 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쉽지만 만남을 약속하거나 기다리는 흥분을 가라앉혔습니다 그저 그 주위를 스쳐 지나며 내 마음의 고향처럼 거니는 마음이였습니다
사람은 비슷비슷한 환경속에서 살면서도 문득 내가 낯설게 사는 것 같은 외로움이 나이가 들어도 뜬금없이 찾아들곤 합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 산 너머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 늘 여행을 떠날 때 따라다니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사는 게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고 낯선이들의 삶 또한 다 비슷한 모습임을 보면서 나도 그 군중들속에 포함된 무리임을 확인하고서야 소외감처럼 느끼는 덧없는 삶의 고독감에서 떠나고 싶던 마음들이 조용히 내 자리로 돌아가는 참 바보스럽고 어수룩한 귀향을 거듭합니다
마음속의 그리움, 그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는 거 같습니다 미리 연락을 하여 차 한잔 마시며 담소할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마음과 마음 사이에 그리움이라는 산맥을 두고 구름같은, 바람같은 인연을 생각하며 지나칩니다 이러한 스침은 내가 종종 떠나고 싶거나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 다시 마음의 배낭을 꾸릴 수 있는 여백을 만들기도 합니다 홀로이 돌아 갈 내 마음의 오지입니다
돌아오는 길엔 새로운 만남의 미련 다 두고 떠나왔지만 살면서 가끔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물그림자의 파문처럼 소용돌이치는 날이 있어 내 안의 여울물소릴 따라 흘러가고 싶어집니다 먼 소식처럼 구월이 오고 있습니다 이미 가을이 잔잔한 호수에 산그림자를 드리웠을 것 같습니다.
2005.9.1 일 먼 숲.
<서성석님의 갤러리에서>
마음의 오지
이 문 재
탱탱한 종소리 따라나가던
그림자 길어져 지구 너머로 떨어지다가
■ 이 詩를 계룡지의 아름다운 수면에 적어 놓고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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