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화천의 물그림자 2

먼 숲 2007. 1. 26. 08:08
 

 

 

 

 

물소리만 들리는 계곡의 바위 뒤로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숲속에 아주 작은 방갈로가 있었다.
통나무집과 스위스풍의 별장같은 작은 집과

하얀벽돌로 굴뚝모양을 낸

백설공주집 (숲속의 난장이 집모양인데 아이들이 지은 이름) , 그리고
그 옆에 둥근 버섯집. 이렇게 네채가 방갈로 전시실처럼
계곡 옆에 산그늘 속에 숨어 있었다.

한낮엔 매미소리가 골짜기를 쩌렁쩌렁 메아리로 울리고
물소리는 쉬임없이 계곡을 따라 수정같은 물을 흘러내리며

하루종일 노래해 밤중엔 물소리가 자장가가 된다고 했다.


그렇게 종일 듣고 있는 물소리는
소음이 아닌 마음의 멜로디가 되어 가슴을 적시고
머리속을 맑게 씻어주고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백설공주집에 짐을 풀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시린 물로 땀을 씻고
오솔길을 따라 친구와 같이 산길을 오른다
마타리,싸리꽃,갯완두.달개비,강아지풀,산딸기,싱아풀 등
온갖 야생화와 들풀향기로 숲을 들어서니 산내음이 싱그럽다


바위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와 푸른 이끼가 세월을 휘감고
녹색의 청다래가 손바닥처럼 생긴 잎사귀 뒤에 숨어
덩굴을 따라 높다랗게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투명한 속살을 보이고
작은 폭포가 소를 이룬 웅덩이마다 
시냇물에 떠내려 온 보랏빛 칡꽃이
소용돌이로 맴돌며 점점히 꽃무늬를 만든다
그 위를 간혹 푸른제비 호랑나비가 유유히 비상하고
풀섶엔 우리의 발소리에 놀란 메뚜기, 팥뚜기,귀뚜라미가
호들갑스럽게 여름의 벌판을 뛰어다닌다.

 

 

 


올려다 보면 하늘과 산.
사방이 산으로 꽉 막힌 산속에서 우린 동화속의 가족이다
눈길은 고추잠자리를 따라 맴돌고 마음은 풀향기가 배어 상쾌하다
계곡의 숲은 인적이 없는 원시림이다
들여다 보면 깊은 수렁처럼 그늘이 어둡다
무슨 다른 생각이 필요하랴!
여기선 문명을 거부한 채 산속에 머문 구름이고 싶다
모두 새가 되고 곤충이 되고 나무가 되고 물이 되어
아름다운 물소리에 젖으면 그만이다
가진 것은 버리고 또 빈 곳은 메꾸지 않아도
저 자연의 소리와 풍경이 저절로 푸른 물이 되어 고인다
그게 산이다
산은 품어주고, 씻어주고, 들어주고, 아늑하고 편하게 한다.

 

칠흙같은 밤이 되면
밝은 샛별과 여름의 별자리와 보석같은 은하수를 보려 했는데
초저녁부터 비가 왔다
빗소리와 물소리를 자장가로 들이치는 빗방울도 모르는 채 단잠을 잤다.
새벽 닭이 운다. 잊고 있던 정겨운 닭소리에 잠을 깼다
아직 어두운 여명이다. 서늘한 산바람이 느껴진다
창이 훤해져서 문을 열어 보니 부슬부슬 안개비가 내린다

안개비로 샤워를 한 산이 솔향기를 풍기면서
아! 시원해 하면서 말간 얼굴을 내민다
초록의 물로 씻어낸 계곡의 아침은 신선하고 청량하다
그 어떤 샴푸의 향기보다도 은은한 풀향기와 시원한 공기다


골 안개가
천천히 붓질을 한다
산을 닮은 노화백의 느낌으로


먼 산은 아득하게 지우고
가까운 산은
더 푸르고 투명한 진초록으로 칠해 간다


안개비는
산봉우리마다 푸르름의 농도를 씻어내어
투명한 계곡의 산빛을 칠하고

맑은 물소리는
시원한 폭포수를 그려낸다


골 안개는
온 산을 하얗게 붓질하며
골골이 그리움을 피워 내고
겹겹으로 외로움을 덧칠해 간다.

 

 

 


비오는 산속의 풍경을 통유리 밖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바라보노라면
아침 산은 이렇게 골골이 뭉턱뭉턱 골안개가 지나면서
아슴아슴한 여백과 그리움을 피워내며 투명한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산은 외로워 오락가락 나그네처럼 가랑비를 뿌리며
그렇게 먼 산마을의 소식을 기다리나 보다
산 끝을 바라보는 눈빛이 깊고 푸르러진다
골 깊은 내면의 길을 따라 안개는 추억의 그리움을 몰고 온다.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깼다
고스란히 가슴이 비를 맞는다


마음바다에 근심이 떠가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시간의 초침으로 산산한 마음을 에인다

 

하얗게 비워 낸 새벽녘의 강가에서
텅 빈 생각의 나룻배는


시름없이 無念에 흔들리다가
빗소리에 잠겨
아스라히 침몰한다.

 

 

깊은 산골을 지나는 구름이 높은 산맥을 넘을적마다
시름시름 눈물을 뿌리며 고개를 넘지 못하고 밤이면 비가 왔다
생각도 저 높은 산맥을 넘지 못하고 골짜기에 갇혀 숲이 되어 비를 맞는다
방갈로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언뜻 깨어나니 깜깜한 새벽이다
뒤척이면서 잠을 청하지만 머릿속은 하얗게 밝아온다

모기도 파리도 없는 청정한 산골이다
비상등에 곤충들이 불나비처럼 부딪치며 길을 헤맨다
계곡은 잠을 잤을까?. 깨어난 물소리가 더욱 커진다
밤새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난 모양이다
그렇게 다시 아침이 오고 오늘도 영락없이
새벽닭은 어둑한 여명을 깨운다.

 

 

2000.7.31 일  먼   숲.

 

     

 

 

 

                                                                   <수채화 전 명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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