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김을 매면서

먼 숲 2007. 1. 26. 07:59

            

 

 

 

           김을 매면서

 

 

              유월 연휴의 한낮은 푸르름이 성하여
              온통 진녹색의 나무그늘로 일렁입니다
              길가나 울타리엔 새빨간 넝쿨장미가
              흐드러진 꽃무더기의 무게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유월의 푸른 담에 허릴 휘감고 있습니다
              올해들어 틈이 없어 그다지 흙냄새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평생 농투성이로 살라면 죽을 것 같던 젊은날의 치기는 어디로 갔는지        

              가끔은 마음과 몸 모두가 흙을 느끼고 싶습니다


              해가 눈두덩까지 차 오른 늦은 아침에야 
              밭을 향해 자전거 패달을 밟았습니다

              한 주일만인데도 어리던 초록의 식물들은
              키가 한뼘씩은 자라나 제법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어릴적 모판에서 홍역을 치루었다는 고추는
              여직 오갈병에 비척거리며 병치레를 하지만
              옥수수나 토마토, 오이, 참외,호박은
              사방으로 넓은 손을 뻗어나가며 제 영역을 넓히느라
              좁은 밭고랑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사이 잡풀도 그 기세를 몰아
              밭고랑 틈 새 마다 뿌릴 뻗으며 솟구치는
              질기고 억센 잡초의 근성을 보여 줍니다
              하여도 그들을 모두 놔 둘 수 없는 형편이라
              미안한 마음으로 김을 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엔 일손이 모자라 김매는 것을 생략하려고
              밭고랑을 검은 비닐로 씌우거나 제초제를 뿌리지만
             그런 큰 농사도 아니고 하니 풀을 뽑고
             호미로 긁적거려 주는 게 땅도 숨쉬고
             그렁그렁 흙을 올려 북도 주게 되니 좋은 것 같았습니다

 

             봄에 모종을 심기 전 대충 흰 비닐로 씌웠는데도 
             잡초는 무더기로 돋아나 반란처럼 비닐을 들고 일어섭니다
             할수없이 반쯤 비닐을 거두고 풀을 뽑고 호미로 긁어 주었지요
             풋풋하고 비릿한 풀냄새를 풍기는 잡초들이
             내 손에 사정없이 머리채가 잡혀져 뽑혀나오고 있습니다
             제일 많은 게 바랭이, 쇠비름입니다
             간혹 명아주나 쇠뜨기,멧싹에 소리쟁이도 있고 이름 모를 풀들도 많습니다
             매정하게 뽑아대면서도 그 풀들을 오랫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 세상에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개념으로 본다면
              틈 새도 없이 씨를 퍼뜨리고 돋아나는 잡초를 이길 수 없을텐데
              인간들을 위해 선택된 식물들의 번식을 위해선 

              실한 한 두개의 우량종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솎아내거나
              가차없이 똑 같은 생명체이건만 잡초라 하여 뽑아내는 마음이
              웬지 약육강식의 인간세상 같아 마음이 씁쓸하였습니다
              나도 언제 쓸모없다고 뽑혀나가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러기전에 해마다 한해살이 풀처럼 
              찬바람 불면 제 풀에 말라 그 자리를 떠날야 할 지 모르지만
              어디서나 겪어야하는 그러한 적자생존마져
              삶의 순리라 받아드려야 하니 좀은 허전하기도 합니다

 

              얼마전 정일근 시인의 시집을 읽다 보니
              마당에 풀을 뽑다 어떤 작은 풀꽃을 보고
              같은 마당에 사는 처지에 차마 애처로워 뽑아내지 못하고
              기다렸다 풀꽃이 진 다음에 뽑기로 했다는 시를 읽었습니다
              그런 시인의 마음도 못되면서 나는 땡볕에 앉아
              구슬땀을 훔치며 벌겋게 댄 얼굴로 김을 매면서
              이 바쁜 세상 개풀 뜯어 먹는 소릴 하는가 싶지만
              새삼스레 내 목숨 또한 잡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한 생을 잘 살려고 나온 목숨을 잡초라 하여
              모조리 뽑아낸 죄업인지 호미질한 오른 팔목이 시큰거리고 아파
              어제부터 칭칭 파스를 감고 온 주위에 
              시큼한 파스냄새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미안하다.

           나로인해 꽃 피우지 못하고 일찍 생을 마감한 풀들이여!

 

 

               2005.6.8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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