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가드너>1922
<비비안리>1913
산들거리는 훈풍이 실크처럼 느껴지는 사월이다. 맨 살을 스치는 감촉도 좋지만 한창 물 오르는 나무들을 휘돌고 가는 바람의 끝은 여신의 길고 나풀거리는 드레스처럼 부드럽고 우아하다. 사월의 봄 볕과 바람결에 눈 뜨는 나무의 꽃눈과 잎눈만 보고 있어도 이 한 계절은 푸르고 건강하다. 아침 출근길에 보니 화단가에 옥잠화 싹이 도르르 말려 한 뼘은 나와 있었다. 원추리 싹도 갈매기 날개짓을 하며 파릇하게 돋아 났다. 라일락의 꽃순이 돋았고 청동빛 모과나무나 단풍나무의 잎이 새부리처럼 뾰족하니 입을 열고 새 봄을 노래한다. 공원길의 개나리나 산수유의 노란빛은 문득 유년의 추억으로 돌아가 어질병을 앓게 한다. 드문드문 심어진 목련이 상아빛 꽃잎을 열며 눈부시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황무지에서도 꽃을 피게 한다는 잔인한 사월은 굳어진 중년의 마음벽을 허물고 아직도 울렁거리게 하며 들녘과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꽃사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자연의 반복된 순환도 영원한 것은 아닐진대 해마다 돌아오는 봄 앞에선 자연은 무변한 것 같고 나는 늙어가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인간의 변화무쌍한 역사속에서 변치않고 늘 봄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내 안에 있어 가끔 추억의 봄도 센치멘탈하고 향기로워진다.
<오드리 햅번>1929
<잉그리드 버그만>1915
얼마전 인터넷상에 세기의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흑백사진이 올려져 있어 다시한번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늘 젊고 우아한 모습으로 각인 된 그녀들의 나이가 이미 모두 팔십이 넘은 나이의 노파가 되어 벌써 여럿은 세상을 떠났건만 여전히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여배우들은 아직도 우아한 목련이나 장미처럼 눈부신 아름다움의 미인으로 남아 있어 변치않는 세월의 착각속에서 나는 미소년처럼 그녀들을 향한 사모의 연정을 보내고 있었다. 스크린에 주루룩 비가 내리고 지린내가 눅눅한 시골의 영화관에서 화면 가득 그녀들의 모습이 어른거리면 숨도 크게 못 쉬며 여배우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며 웃고 울면서 가슴앓이를 했다. 방과 후 생활지도 주임 선생님에게 들킬까봐 가슴 조려가며 몰래 "별들의 고향"이나 "영자의 전성시대"를 볼 때는 간이 콩알만해져 무얼 봤는지도 모르지만 "자이안트"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전쟁과 평화""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닥터 지바고"같은 세기의 명화를 보고 오는 길은 눈 앞에 여배우들의 얼굴이 꿈처럼 오버랩되곤 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밤길을 걸어오면서 사월의 목련처럼 화려하게 불켜진 샹드리에 아래서 춤추던 오드리 햅번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던 푸른 날, 영화속의 장면은 꿈과 동경의 대상이였다.
<그레이스 켈리>1929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
그리스의 여신처럼 신비롭고도 완벽한 얼굴과 몸매의 에바 가드너,표독스러울만치 당당하고 새침한 매력의 비비안 리는 사파이어처럼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요정처럼 어여쁘고 귀여운 오드리 햅번의 커다란 눈은 알프스의 호수 같아 오랫동안 풍덩 빠진 채 헤어나지 못했고 잉그리드 버그만의 지적이고 촉촉한 눈과 백치같은 순수함엔 가슴이 슬픔으로 젖었다. 교황이 서거하고 난 며칠 후 한 때 여배우에서 모나코의 여왕이 된 우아한 그레이스 켈리의 남편인 모나코 왕이 죽었다. 그녀야말로 저 목련처럼 우아한 멋을 지닌 여배우였다. 내 안목도 이러한 고전적인 미인의 틀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보면서부터 점차 개성적인 아름다운 여배우로의 변신이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작고 아담한 여인이 끊이지 않는 스캔들을 몰고 다니면서도 그녀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눈부신 다이아몬드같이 빛나기만 했고 그녀의 사파이어같은 푸른 눈을 볼적마다 여름밤의 샛별을 생각했다. 그 이후 소설같은 스토리 위주의 영화에서 탈피하면서부터인지 몰라도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인 마랄린 몬로의 이후 육감적인 글래머의 여배우들이 탄생되었다. 그 중 소피아 로렌은 내겐 파격적이였다. 큰 눈과 입, 큰 가슴과 히프까지 그녀가 클로즈 업 되면 화면을 꽉 채우고 넘쳐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영화 "해바라기"에서는 난 시베리아 벌판의 해바라기 밭과 화면을 가득 채운 그녀의 모습만 기억나곤했다. 그리고 아직도 마랄린 몬로만큼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갖게 하는 여배우가 있을까?
<소피아 로렌>1934
<마랄린 몬로>1926
짧은 인생만큼 그녀의 한 생은 불행했을 것 같은 마랄린 몬로는 내가 거론하지 않아도 세기의 미스테리한 여배우일 것이다. 퇴폐적이면서도 관능적인 그녀의 멋은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하는 데 주인공이기도 한 것 같다. 여직 내가 나열한 여배우들의 얘긴 오히려 군더더기고 아무런 상식적 도움도 안될만큼 사진만 보고도 한 때 누구에게나 미의 여신처럼 아름다웠고 마음속의 애인일 수 있었다. 그 밖에 야성적인 캔디스 버겐이나 지적인 훼이 다너웨이등 수 없이 많은 여배우들이 꽃처럼 피어나 새로운 인상을 심어 주곤 했지만 내 푸른날 스크린속에서 저 흑백사진 속의 여인들은 늘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이제 그들도 거의 세상을 뜨거나 알아 볼 수 없는 할머니가 되었겠지만 나는 그들의 늙음을 상상하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흘러간 강물처럼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오래 전 타계한 마랄린 몬로는"NO RETURN" "NO RETURN" 하며 노래하는지 모르지만 내 추억속에선 그녀들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다. 비록 돌아오지 않는 청춘이라해도 나는 흑백사진 속의 여배우들을 만날 때는 까만 교복에 하얀 프라스틱 칼라를 낀 아직도 여드름이 듬성듬성한 열아홉이고 싶다. 흥건한 봄비에 어디선 함초롬히 꽃이 피고 어디선 툭툭 속절없이 목련이 진다. 세월은 가고 오고 나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지만 마음 속의 꽃은 지지 않고 사월의 찬란한 꽃처럼 피어난다.
<사진자료 : 다음 아고라 홈에서>
2005.4.11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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