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모레면 벌써 삼월이고 겨울잠 자던 벌레나 개구리가 나오고 초목의 싹이 돋아나는 때라는 경칩이 가깝다. 어수선하게 시작했던 새해도 정월 대보름을 지나고 나면 해빙이 시작되어 서서히 봄의 기미들이 근질거리는 느낌이다. 올 설날은 샌드위치 연휴가 끼어 모처럼 한주를 몽땅 쉬게 되었고, 특별히 귀향길이 없는 나로선 번잡한 길을 나서기도 망설이고 그렇다고 여유롭게 비행기 타고 여행가는 팔자도 아니니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아깝게 시간을 허비하는 휴일이 되고 말았다. 옛날처럼 며칠씩 이웃 친지들을 찾아 온동네를 인사 다니거나 먼 곳까지 어른들을 찾아 뵙던 훈훈한 예절도 사라지고 동네 마당에 모여 윷놀이나 널을 뛰던 설 풍속도 옛 이야기니 요즘은 답답하고 건조한 세시 풍경이 아닌가. 결국 춥다는 핑계로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종일 방안을 뒹굴며 T.V에서 방영되는 지나간 영화나 보는 휴일의 첫날이 시작 되었다.
아내는 내가 쉬는 관계로 다 큰애들이지만 편한 마음으로 딸들을 맡기고 볼 일이 있어 서울로 출타를 하였다. 밍기적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오전이 후딱 지나갔고 나는 늘어지게 누워있는 성격이 못되어 창 밖을 내다보며 동물원의 짐승처럼 어슬렁 거리다 보니 점심때도 가깝고 하여 궁리끝에 이참에 만두를 빚어 볼까 생각하고 아이들의 의사를 물으니 대 찬성이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작은애랑 슈퍼로 나섰다. 만두를 빚어 본지가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 전에 설날 전이면 누님이 만두를 빚고 옆에서 난 홍두깨로 반죽을 밀거나 사각으로 자른 만두피를 마름모로 보자기 싸듯 만두소를 넣고 꼭꼭 여미는 걸 배우긴 했다. 그 맏누님의 시집 간 빈 자리를 채우느라 어린 나이에 사내놈이 어쩔 수 없이 부엌을 들락거리며 웬만한 처녀만큼 집안일을 하다 보니 결혼 후에도 껄끄러운 시어머니꼴이 되었다. 처음엔 뒷짐지고 잔소릴 은근히 했지만 오래전부터 거의 손을 놓았다. 그래도 주방일이 낯설지 않으니 아내가 없는 때는 가끔은 아이들과 새로운 먹거릴 만들어 먹는 적도 있게 되었다.
입맛은 통일되어 온 식구가 만두를 좋아하지만 정월엔 처갓집서 얻어다 먹거나 근래엔 냉동만두가 싸고 편하니 번거롭고 손가는 만두를 빚을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작년 여름 엉뚱한 만두 파동의 여파로 잠시 만두에 대한 구미가 식었지만 그래도 마트에 가서 냉동식품을 사는 건 유독 만두뿐이니 우린 만두 사랑 가족일것이다. 냉동만두가 깊은 맛은 없지만 가끔 간식으로 쪄서 게눈 감추듯 해치우는 식구이고 보니 벌써 만두를 만들기도 전에 군침을 돈다. 김장김치야 넉넉하고 남겨진 당면도 있어 슈퍼에 가서 숙주나물과 두부만 사들고 왔다. 돼지고길 갈아 넣으면 더 부드럽고 구수하긴할텐데 고길 좋아하지 않은 터라 오늘은 빼기로 했다. 그냥 칼칼하고 담백한 김치 만두를 만들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치 다지는 건 큰 일이였다.
옛날 같으면 넓은 소나무 도마에 무쇠로 만든 무거운 칼로 얼음으로 서걱거리는 김치를 숭숭 썰어 신나게 두드려 대면 재미있을텐데 지금은 푸라스틱 도마에 스텐칼이라 소리만 요란했지 도무지 다져지는 맛이 없다. 추억처럼 칼코가 버선코처럼 올라간 무쇠칼이 그리웠다. 숫돌에 썩썩 하얗게 날을 세운 칼로 김치를 송송 쓸거나 다지면 금방 일이 쉬울텐데 이건 완전히 난타 공연장이 되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조금씩 두드려 본다. 나도 바로 이게 난타란 거다 하면서 칼날이 무뎌지도록 두드리며 이런 저런 묵은 해에 쌓인 스트레스의 무게를 실어 애꿎은 김치만 짖이기고 있었다. 그 사이 물을 올려 놓고 숙주와 당면을 데치며 두부를 뭉게고 하나하나 다지고 썰었다. 다시 그 자잔한 조각들을 망사 주머니에 담아 힘주어 짜내는 일, 모르긴 몰라도 힘은 들지만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스트레스 해소법일게다. 곤죽이 되도록 비틀고 뭉개어 양념을 넣고 비벼놓으니 걸쭉고 먹은직스런 만두소가 되었다.
만두로 점심을 떼우려했는데 만두를 만들기도 전에 어영부영 밥때가 지나고 시장기가 돈다. 갈수록 옛맛이 그리워져 예전에 화로불에 묵은 김치나 알타리를 뚝배기에 넣고 된장으로 은근히 끓이던 구수한 찌게가 생각났다. 마침 우거지처럼 젖쳐 논 묵은 알타리가 있어 된장을 조금 넣은 뒤 무가 푹 무르도록 끓여 대충 찬밥에 알타리 찌게로 맛나게 먹었다. 다행히 아이들의 입맛도 촌스러워 간간한 찌게 하나로도 밥을 맛나게 먹는다. 점심 후 만두피 반죽을 하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얼추 준비가 끝나 네 식구가 둘러 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아직 어리지만 추석때마다 송편을 만든 아이들이라선지 터지지 않게 만두 귀를 여미며 어렵지 않게 만두를 빚는다. 아련히 어린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화롯불이 있는 따스한 온돌방에서 화려한 목단이 그려진 양은 두레밥상이나 작은 사각의 교잣상을 펼쳐 놓고 식구가 둘러 앉아 송편 빚듯 만두를 빚었었다. 뜨끈한 아랫목의 온기처럼 정겨운 풍경이 아니였던가.
요샌 명절이 와도 전혀 명절 기분이 살아나질 않는다. 핵가족화 된 현대사회에서 먹을 사람이 없으니 다양한 설음식을 장만하지 않지만 제대로 맛을 내는 솜씨를 배운 어머니의 대가 끊기기도 하였다. 엿강정에 식혜, 수정과, 굳은 인절미를 구워 조청에 찍어 먹기도 하고 드물게 수수부꾸미도 먹어 본 기억이 있다. 동네 한 바뀌 돌면서 종일 세배하고 대접한 음식을 먹었던 그 시절, 전통처럼 어느집은 어떤 음식이 맛있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저녁나절 만두를 삶아 통통한 만두의 배를 갈라 슴슴한 초간장을 넣고 한 입씩 베어 먹으니 꿀맛이다. 좀은 두툼한 만두피의 쫄깃하고 구수한 맛과 칼칼하고 새큼한 김치와 두부,숙주, 당면의 부드럽고 단백한 맛이 어우러진 만두소의 맛도 그만이지만 둘러앉아 만든 가족의 손맛은 참 배부르게 행복했다. 이러한 포만감은 혼자가 아닌 여럿일 때 배가 되는 것 같다. 해체되고 편리화된 메마른 생활보다는 번거롭지만 만두처럼 뭉치고 감싸안으며 하나하나의 개체를 아우를 때 또 다른 모양의 행복이 창출될 수 있을텐데 점점 우린 분리되고 단순해져간다. 결국 우린 얼마나 외롭고 고독해질건지 때론 황혼의 하루가 긴 그림자로 다가선다.
2005.2.27일 먼 숲.
<사진: 다음 가라미님 블러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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