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어린 천사의 손톱을 깎으며

먼 숲 2007. 1. 26. 07:56
 

 

 

 

 

 

                           

                                                              <수채화 이상권>

 

 

 

어린 천사의 손톱을 깎아주며 

 


봄날 오랜만에 아내가 외출한 탓으로 내가 노랑병아리같이 귀여운 두 딸을 목욕시키게 되었다. 아빠의 행복은 부자(父子)가 목욕탕에 갈 적에 느낀다지만 서운하게도 내겐 그런 경험이 없다. 나는 일찍 아버지를 여위어 아버지의 기억도 모르지만 지금은 또 딸기아빠인 처지라 부자(父子)가 나란히 목욕탕에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아빠가 어린 딸들을 목욕시키는 특별한 의식이 서툴고 어색하지만 단물 오른 복숭아처럼 보드랍고 통통한 아이들의 살결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살내음을 느끼며, 아직 부끄럼을 모른 채 발가벗은 알몸을 드러낸 천사들의 모습을 보는 행복이 비누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여리고 뽀얀 살결을 밀어주는 솥뚜껑 같은 아빠의 손길이 우악스러울텐데 아이들은 간지럼을 타며 까르르 넘어가고 웃음소리가 실로폰소리처럼 경쾌하다. 아버지와 아들간에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주고받는 뿌듯함은 모르더라도 내 살붙이를 깨끗하게 닦아주는 지금 이 순간은 부모로서 느끼는 또 하나의 행복이 아닐까 한다. 품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는데 해마다 아이들이 쑥쑥 커 가는 것을 보니 이러한 부녀간의 애틋한 교감도 순간이라 여겨진다. 그래도 귀엽고 예쁜 두 딸아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얼른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목욕 후 발그레하고 투명한 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의 콩알만한 손톱 발톱을 깎아 주다가 새삼 부모라는 책임감의 무게를 의식하며 힘들게 나를 키워 준 어머님의 사랑이 그리워진다. 차마 손톱깎이를 들이대기엔 너무 작고 앙증맞은 손과 발이 이뻐서 깨물어본다. 우리 부모님도 어릴 적엔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웠을까 생각하지만, 그런 기억은 아득하고 내 어릴 적엔 나 혼자 저절로 커진 것처럼 생각되니 어른이 되었어도 참으로 우매한 것 같다. 그때는 칭찬보단 야단이 전부고, 응석보단 순종하며 살았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사랑이 부족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것은 그 시절 모두 힘겨운 삶을 살 때이기도 하지만, 어머님 혼자 가장의 모든 짐을 지고 흔들리지 않는 힘든 삶을 사시는 것이 그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보다도 절절히 가슴으로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상하고 여유있는 사랑은 못 받았지만 어려울 적 약해지지 않고 서릿발처럼 일어서시는 어머님의 강인한 희생이 내겐 어떠한 절망도 이겨내게 하는 힘이 되고 사랑이 되었다.

 

이제 내가 부모가 되어 지금 두 딸의 작고 예쁜 손톱을 깎아주고 있다. 이 아이들을 다시 훌륭한 자식으로 키워야 하는 순리의 굴레 속에 있다. 어릴 적 어머님이 이고 계셨던 힘겨운 희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여 나는 그 짐을 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철없던 생각이 결국 내가 부모가 되고서야 어머니의 그 짐이 당연한 순리이며 숭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이 내게 깊이 뿌리내려 이젠 내 자식에게 솟아나는 사랑의 샘물을 한없이 퍼주고 싶어지는 내리사랑으로 이어진 것 같다. 결국 난 내 어머님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하나도 덜어 주지 못해 죄스러워하면서 나 역시 자식사랑이라는 벗을 수 없는 짐을 짊어졌다. 그래도 그 짐이 행복스러워지는 것은 인생의 순리가 아닐까. 지금은 두 딸을 모두 등에 업어도 행복한 무게이지만 해마다 그 무게는 감당하기 벅차게 무거워진다. 이제 나도 어머님이 나를 일깨워 준 사랑을 거울삼아 아이들에게 물려받은 사랑으로 키우리라. 원하는 것을 다 충족시켜주는 것 보단,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고, 인내할 줄 알고, 스스로 사는 것을 터득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게, 사랑을 가정이라는 인생의 정원에 심어 주고 싶다. 그것은 아마 가장 어렵고 값진 문제이며 세상 모든 부모의 뜻일 것이다.

 

어느새 곱던 어머닌 파뿌리같은 머리마져 다 빠져 허연 정수리가 보이고 허리는 당신이 살아오신 고갯길보다 더 꼬부라지신 힘없는 노파가 되셨다. 지금도 다 큰 자식들에게 무한정으로 무엇인가 주고 싶어 평생 농투성이로 산 힘겨운 노동을 놓지않고, 봄이면 심고 가을이면 거두어 놔눠주시느라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 한가하고 틈이 있으면 근심 걱정이 비집고 들어와 일에 매달린다 하시지만 아직도 자식에게 기대지 않으시려는 생각과 행여 편하면 누워버리실까 하는 노인의 외로움때문이리라. 해가 갈수록 늦은 깨달음으로 그 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부모에겐 소홀한 이 어리석은 사랑도 다시 내 자식에게 배풀면 이해하시겠지 하는 핑계만 대고 있다. 이제 해마다 마지막처럼 사시는 어머님, 제 인생의 스승과 영원한 모태는 당신이십니다. 이젠 고단한 삶을 이 막내의 등에도 기대시며 올해도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세요. 그리고 조가비같은 손톱발톱도 닮은 사랑하는 딸들아. 아름답고 슬기롭고 진실된 어린이로 자라거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 뒤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주는 나무처럼 성장해다오.

 


1999년 푸른 오월에 아빠가

 

 

                                                        

                                                                           <2004년 여름휴가 때 두 자매>

 

 

■ 이 글을 쓴지가 6년이 되었군요. 예전의 문학서재나 다른 곳에서 오래 전 이 글을 보신 분도 많으실 듯 합니다. 그 새 아이들이 몰라보게 자라서 이 푸른 오월 싱그러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시 글을 올리면서 새삼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노랑병아리 같던 아이들이 저렇게 컷구나 하는 아비의 흐믓함은 팔푼이 같을지라도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몰라도 아직은 건강하고 반듯하게 커 주어 아이들에게 고맙고 행복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어느 부모나 다 같은 생각이겠지요. 그 무슨 욕심이 더 필요할까요. 그저 자식이 바르고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고 건강하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앞으로 어떤 삶의 고개와 난관이 부딪칠지라도 그것 또한 그 애들의 몫이고 저희들이 잘 헤쳐가고 이겨 나가겠지요. 점점 어려워지고 힘들어지는 가족이란 범주가 상처나고 깨져가는 요즘입니다. 작지만 개인에겐 하나의 커다란 우주이기도 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조화로운 세계가 평화의 근원이겠지요. 아이들아! 잘 커줘서 참 고맙다. 더욱 아름답게 자라거라.

 

2005.5.4일  먼   숲.

 

 

 

 

 

 

'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을 매면서  (0) 2007.01.26
초록의 차밭을 찾아 나서는 나그네  (0) 2007.01.26
지지않는 꽃  (0) 2007.01.26
할미꽃 당신  (0) 2007.01.26
만두 빚는 남자  (0) 2007.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