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추 수

먼 숲 2007. 1. 2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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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이고 사는 시월의 마음은 햇빛속에 서면 맑고 쾌청해진다.  한 두차례 바람처럼 스치는 가을비가 지나고 상강霜降이 가까와 오니 아침 저녁의 기온이 제법 쌀쌀하다. 설악산의 붉은 단풍 소식이 느리게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이, 대관령의 날씨는 급강하 하여 영하로 떨어지고 얼음이 언다는 일기예보가 빠르게 가을을 밀어내고 있다. 출근길에 잠깐씩 보는 벌판은 눈부신 황금벌판이고  벌써 중간중간 추수가 끝나 비어 있는 논도 있다. 찬 이슬이 내리는 한로를 지나고 무서리가 내리는  상강 전후로는 된서리 맞기전에 모든 곡식을 추수해야 하기에 농촌에서는 앉을 틈 없이 바쁜 절기다. 밭둑의 풀들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녹두알 톡톡 터지듯 메뚜기가 튀어다니는 가을의 한가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곡물이 얼기 전에 거두고 갈무리 준비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들에 나가 벼를 베고 콩이나 깨를 털어야 하며 고구마를 캐고 김장배추 무우도 돌봐야 한다.

 

가을이 무르익는 이맘때 쯤이면 들판엔 분주하게 추수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넓디넓은 벌판에 커단 기계만 한 두대 보일 뿐 어디서도 줄지어 벼를 베거나 흥에 겨워 탈곡을 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피폐되어가는 농촌을 등지며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기계들이 들어서서 자동차가 길을 내듯 훤하게 모를 내거나 쓸쓸한 추수를 한 지가 오래되어 간다. 지금은 힘차게 발틀을 밟으며 탈곡기에 벼를 털던 추수하는 풍경은 박물관에서 설명을 들어야 할 처지다. 가을이면 여기저기 마당에서 힘차게 "앵앵~앵앵~" 거리는 발틀의 탈곡기를 밟으면 "차르르르" 소릴 내면서 따갑게 낫알이 튀어나가는 탈곡하는 장면이 한창이였는데  그러한 정겨운 시골풍경이 사라진지 근 삼십년이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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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적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이 한 조가 되어 서로 힘을 나누며 발틀을 밟고 탈곡기 옆에 작은 대문을 떼어 걸친 뒤 형이나 동생은 묶어 논 볏단을 끌러 한 주먹씩 떼어 주거나  널판지 위에 나란하게 벼를 한 손씩 나눠 놓으며 가족끼리 탈곡을 하는 집이 많았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탈곡된 볏집을 묶어 다시 짚가릴 쌓으시고 할머니는 북데기를 갈퀴로 긁어내시며 알곡을 추수리셨다. 마당 시중을 들던 누이는 부지런히 샛밥을 준비하였는데 그 때의 새참은 꿀맛이였다. 하얀 쌀밥에 고깃국을 끓이기도 하고 햇무로 무친 무생채나 새빨간 깍두기는 맛도 있지만 단풍처럼 이쁘기도 하였다.  이렇게 옛날의 추수하는 날은 대가족 제도에서 보는 훈훈하고 따듯한 정경이였다. 

 

풍년이 들어 지붕처럼 높다랗게 노적가리를 쌓고 한 해의 수확을 탈곡하는 가을날은 일년 중 농부가 가장 행복해 하는 계절일 것이다. 반면 흉년이 들거나 거둘 것 적은 가난한 살림집은 다가 올 긴 겨울을 걱정하며 무서리 내리는 시름진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부잣집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이 마당 귀퉁이나 텃밭에 쌓아 논 노적가리의 모습이였다. 그런 까닭에 마당이 텅빈 집이나 기껏 작은 돌탑만한 볏가리가 있는 가난한 집은 상대적으로 그 가을이 추웠고 차차 한두집씩 대처로 나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을 안고 어느날 봇짐을 싸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산봉우리만한 노적가리를 쌓을 일도 없이 컴바인이란 기계는 벼를 베면서 깨끗하게 탈곡까지 되어 나오는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해 수입쌀 개방에 죽어나는 농촌은 멀쩡한 벼를 생으로 갈아 엎는 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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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규모로 소규모의 벼타작을 하던  농촌이 경운기가 나온 칠십년대 들어 발동기에 힘을 실어 커다란 탈곡기가 등장하고 하루에 서너집씩 한꺼번에 탈곡이 끝나는 편리해진 기계화가 되었다. 새벽부터 대여섯명 넘는 장정들이 작게 묶어진 볏단째로 탈곡을 하면 빠르기도 하지만 쌓이는 북데기까지 기계로 돌려 깨끗하게 알곡을 분리하기때문에 애써 바람 부는 날 바람개비를 돌리거나 키질을 하는 수고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경운기가 사용되고부턴 마른 논바닥에서 타작을 해도 되니 구태여 볏가릴 마당까지 운반하지 않아도 되었다. 세월은 그리 멀게 지나지 않았건만 그동안 신나게 발틀을 밟으며 벼를 터는 일뿐 아니라 넓은 논에서 많은 사람이 줄지어 벼를 베고 논바닥에서 볏손을 뒤집으며 벼를 말리는 작업과, 묶고 나르는 힘든 노동까지 생략되어 버렸으니 품앗이를 하던 일꾼도 사라지고 자연적으로 농촌의 노동력은 기계로 대체된 셈이다.

 

이젠 콤바인이란 농기계의 발달로 혼자 벼를 베고 탈곡까지 그 자리에서 되어 나오니 사람이 하는 일은 없어진 셈이다. 젊은 날 물골이 깊은 논에 벼를 말릴 수 없어 천근만근되는 젖은 물벼를 지게로 져 나르다 허리를 삐끗하여 아직도 가끔 좌골신경이 도지곤 했는데 지겹던 농사일도 이제는 향수처럼 그립기만 한 시절이 되었다.  뜨거운 피가 끓던 스무살엔 드넓은 세상을 두고 구석진 논구석에 쳐박힌 자신이 싫어 틈만 나면 기차가 지나는 먼 철길을 보며 떠나고 싶었다. 이젠 피땀 흘려 고생하며 땅을 파고 농사를 짓던  부모들도 다시 흙으로 돌아갔거나 쇠진한 몸으로 텃밭이나 돌보며 산업화에 밀려 해체된 가족의 한사람으로 홀로 고독하고 외로운 하루를 보내시기도 한다. 농사일이 때론 지겹고 막막하기만 해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 도시로 나가던 시절도 돌아갈 수 없는 옛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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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도시생활도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에 사람이 필요한 일자리는 자동시스템이나 기계에 밀려 현저하게 줄어 들어 실업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한 집안의 어른으로 존경받으며 인생의 거울처럼 비춰주던 우리들의 부모나 노인들은 퇴물처럼 자리를 잃고 방치되고 대책없는 고령화로 경노사상마져 무너지고 있다. 어차피 자연의 섭리가 달이 차면 기울고  때가 되면 그 자리를 물려주며 새 주인이 들어차는게 순리라지만 지금 현실이 자연스런 순환의 흐름이 아닌 혼란스런 시대라 투덜대는 불평이  짧은 시각으로 본 사견일 뿐일지 모른다. 인류의 역사학자들이 보는 이 짧은 근대사의 흐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돌고 도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거나 비슷한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편리해진 현대사회는 많은 것을 얻은 대신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우리의 조상이 살아 온 오랜 농경사회의 모습은 가난했지만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이상적인 생활이였을 수 있다.

 

어쩌면 시간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변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절기의 흐름은 하루 하루 다른 얼굴로 다가와 지금은 풍요로운 가을의 한 복판이다. 나무의 우듬지부터 붉어진 단풍들이 보이고 산색이 그 푸른 빛을 잃고 있다. 한여름 질펀하게 물들었던 초록의 기운이 시들고 논과 밭은 결실을 거두어 들인 자리들이 휭하게 드러나며 다시 빈자리를 내어놓고 있다. 어느덧 내 인생의 가을도 무르익어 간다. 생각해 보니 우리 생의 가을도 똑 같은 이치일 것이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남겨주거나  떠나기 위해 스스로 단단해지거나 가벼워지는 열매맺음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또 다른 내생 來生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알곡들을 몽땅 털어주고 앙상하고 보잘 것 없는 빈가지로 남는 것이 추수가 아닐까. 비록 나는 내어줄 게 무언지 늘 빈 마음이지만 그렇게 허허로움을 느끼는 건 이 가을 사랑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추수를 끝 낸 벌판엔 산그림자가 길다.
 

 

2004.10. 17일. 먼   숲.

 

 

 

■ 노래 :바리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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