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세월의 밑줄 긋기

먼 숲 2007. 1. 26. 05:15

 

 

 

 

 

 

 

 

 

 

 

 

 

 

 

 

 

<수채화   정 인 성>

 

 

 

 

푸른 시간의 결들이
아득한 회향(懷鄕)의 숨결로 잠든 골동품처럼
그 향기와 윤기를 간직하며 살 수 있을까

어머님의 쪽 진 머리의 동백기름 냄새나
코티분 속에 묻어 논 바늘처럼 녹슬지 않고
오동나무 궤짝속의 놋그릇처럼 세월을 닦으면
거울같은 내 모습 볼 수 있을까

동그란 문고리를 열고 닫고 하면서
격자진 문살처럼 엮어진 추억의 이야기를
빈 원고지의 여백속에 세월의 흘림체로
시냇물 흐르듯 그렇게 그려 낼 수 있을까

빛 바랜 갈빛의 낙서장을 들추다
음습했던 청춘의 오솔길에 번진 청태 낀 추억을
아주까리 기름이 반들대는 마루결에 엎디어
마음의 나이테처럼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수없이 피고 진
뒷 뜨락 여름꽃의 잔영이
햇 봄 메주 뜨는 장독대의
까만 간장빛 같은 기억의 동굴을 지나면
누이의 손끝에 물든 봉숭아빛 꽃물처럼
그 다홍빛이 바래지 않고 있을까

젊은 날 누님이 심어 놓은 백합의 향기와
유월, 내 들창에 넘실대던 분홍빛 장미의 향기
먼 그리움의 긴 꽃대를 올려
여름의 울타리를 내다보던 상사화의 눈빛도
검버섯 피는 세월의 고랑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을까

사라지는 것은 없는데
다만 우린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2001.2.8일. 추억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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