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가 그친 나즈막한 산길을 오르면
좁은 오솔길이 순식간에 작은 도랑이 되어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기도 하지요.
골짜기를 따라 비안개가 몰려가면
순간 솔향기나 나무냄새가 바람처럼 스치기도 하고
이슬을 털고 거니는 옷섶에서는
초록의 풀향기가 납니다.
쑥, 억새, 오이풀, 강아지풀, 엉겅퀴, 명아주,
달개비, 개망초, 쇠비름, 바랭이, ...
길을 지우며 억세게 자라는
이름도 알수 없는 여름의 풀들을 헤치고
젖은 소매를 털면서 산길에 들어서면
마음도 무성하게 풀섶을 이루지요.
여름산은 그 풀섶부터 시작하지요.
어둠이 기웃거릴 정도로
숲은 녹음으로 우거져 어둠처럼 깊어져 갑니다.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의 행로를 오가다 그 숲을 보면
불현듯 저 보이지 않는 산속으로 잠적하고픈 충동을 느낍니다.
잠적이란 종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뜻인가요?
흔적도 없이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니고
문득 일탈을 꿈꾸거나 잠시 숨어버리고픈 마음이 듭니다.
종종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아마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서 오는 굴레이겠지요.
우린 모두가 가족이든, 학교이든, 회사이던간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웃이 되어
나를 위해 남에게 적응하고 맞춰가며 살고 있지요.
간혹 모두가 자신의 불만과 섭섭함을 숨기면서
만족하지 못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기도 하지요.
모나지 않은 사람이야 서로 어울려 엉긴 감정을 잘 풀기도 하고
능력있는 사람은 그만한 노력으로 자신의 성취욕을 느끼며 행복하기도 하지만
많은 소시민은 요즘 농성장에 모인 노조원들의 욕구처럼
가슴에서 풀어놓지 못한 불만들이 쌓여 있기도 하겠지요.
헌데 전 같이 동참해 힘이 될 수 있는 노조라는 것조차 가져보지 못했군요.
제가 우매하고 모자라서인지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여러가지 짜증과 불만을 품고만 있다가
저렇게 푸르러진 청록의 울창한 숲을 보면
모든 것 다 벗어버리고 숲이 되고 싶어지지요.
솔직히 그 숲속으로 잠적해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게 다 제대로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겠지요.
여름의 울울한 숲은
이름도 모를 풀과 덩굴로 시작해서
셀 수 없이 많은 푸른 나무가 어우러진 조화로운 집합의 이름일텐데
마치 은둔할 수 있는 비밀스런 계곡쯤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숲만 보고 그 개체인 작은 나무들은 생각지 못하고 있지요.
나 자신도 그 숲을 이룬 하나의 나무이거나 풀에 불과할텐데
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비틀댑니다.
나무가 우뚝 서 있기까진
나이테처럼 늘어난 세월의 흐름을 견딘 까닭이겠지요.
그런데 불혹의 반을 넘은 세월의 나이테를 살면서
아직 든든한 뿌릴 내리지 못한 것은
세상을 헛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그게 인생이라고 말하기엔 억울하고 삶이 무가치해 보입니다.
그래도 나를 위주로 해
해바라기처럼 사는 가족이 있는 입장에서
저도 또 하나의 작은 숲을 이룬 셈이겠지요.
어쩌면 작은 정원같은 가정을 영위하기 위해
그 작은 평화의 숲을 지키기 위해
때론 외롭고 때론 지치고 때론 불만을 숨기면서
항상 편안한 그늘을 만들어 줄 큰 나무가 되고 싶어 하겠지요.
내 마음의 聖山처럼 깊어지는 여름산을 보기 위해
명상과 충전을 위해 침묵하는 숲이 되고자
난 내 옷섶을 적시는 풀섶부터 더듬어 갑니다.
가끔은 날 선 억세풀에 마음을 베어가면서...
2003.7.1일 먼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