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雲山의 쪽빛 호수

길이 내게로 온다

먼 숲 2007. 1. 2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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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기억했다

 


가을햇살이 실그물처럼 일렁이던 가로수 사이에서
나무처럼 망연히 서서
손금 들여다보듯 지난날을 추억하다 누군가가
바람처럼 한숨을 쉰 것을 기억했다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은데
제자리걸음만 한 것 같았다


길이 얘기했다


걸어 온 길을 자꾸 되돌아 보는 것은
가도가도 이어진 길때문에
다만 내가 온 길을 잊어버릴까봐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서라 했다
아직도 길의 끝을 모르면서 마치
어머니와 이어진 끈이 끊어지는 것 같은
무서움에 돌아보는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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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나와 마주쳤다


지나간 것은 아쉬워 말라고 했다
지금 오가는 모든 것은
지나간 것이 다시 되돌아 오는 거라 했다
낙엽을 몰고 가는 바람도
국화를 안고 오는 저 여인도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려가는 아이들도
언젠가 멀리 떠났다 다시 오는 거라 했다
길이 나를 기억한다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길이 내게로 온다


아득한 과거로 누워있던 길들이
먼 기억의 소실점으로부터
줄지어 선 십일월의 가로수 길을 따라
열병식처럼 일어서서 내게로 온다
그 길 끝에서 외로운 한 사내가 걸어온다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가


2003.10.23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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