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었다고 기별할 이도 없는데 지워지지 않는 추억처럼 가슴에 국화 향기가 깊어진다 마음 끝 그리움으로 취해 어지럽다
내 인생의 향기를 지니고 싶다면 노오란 국화 향! 마른 기억속에서도 피어있는 황국의 꽃냄새이고 싶다 벗이라는 낙엽같은 이름에서 누룩같은 국화향이 난다
김포 평야가 황금들판으로 물들어 가면 국화가 피었다고 국화가 피었다고 먼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련다
국화향기처럼 저물어 가는 사람이 그리워 그 먼사람에게 엽서를 쓰련다

『그 산 언덕 3부 능선 억새꽃이 은빛으로 빛나고 산섶 호젓한 오솔길 오르다 산비탈 구절초가 다북하게 피거들랑 거기 산 아래 골밭에 수수가 익어 바람에 휘청거리면 가을 날 바람처럼 올라 오거라
오래 전 가을날 코스모스 핀 자유로를 따라 임진강 하류쪽으로 가다 보면 에펠탑처럼 송전탑이 보이고 그 샛길을 내려오면 논길 옆으로 소국이 낮으막하게 핀 "풍경"이란 곳이 있었지 그 찻집에서 국화차라도 마시자 국화차가 없으면 가을하늘이라도 마시자』
서늘한 가을이 어둠을 허리께까지 끌어 덮은 저녁 그 집 고적한 섬돌 위엔 흰 고무신 한켤레 없는데 숨어서 귀뚜라미가 운다 창호지에 스민 달빛에서 노오란 국화 향기가 피어난다
바람이 그 적막한 집을 지나쳤을까 필시 그는 엽서를 받았을텐데 부재중이다
2003.9.21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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