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위의 날들

불일암을 내려오며

먼 숲 2013. 5. 15. 17:58

 

 

 

 

 


 

 

 

 

 

 

 

 

 

 

 

 

 

조계산이 연두빛으로 번져가는 봄 날

산벚꽃이 봄비에 서설처럼 날리던 날

바람도 머물지 않는

빈 의자만 있는 불일암에 올라

삼십년의 방랑을 내려 놓고 왔다

 

나의 방랑이 시작되었던 그 암자에 드니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려내려

한 때 그 곳에 머물렀던 마음 내려놓고

얼굴 가리고 통곡했다

그제사 막혔던 응어리 풀리고

무겁던 마음 비워지는 듯 가벼워진다

 

봄마다 남쪽으로 행하던 방랑을 내려놓고

이제 난 또 어디로 떠날 것인가

그저 무심한 마음 변두리에

사월의 산빛 곱고

떠난 것도 변한 것도 없는 봄산에

세월만 늙어 청춘은 아득하다

 

아! 그리 고뇌하고 방황하던 아픔이

돌아 올 수 없는 아름다운 청춘이였다니

허허한 발걸음의 하산길에

낙화가 분분하다

 

우린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잠시 머물렀던 의자를 내 주는 것은 아닌지

 

대숲을 지나자

남기고 오는 것도 없는데

물소리 앞서서 따라온다

 

 

 

2013년 5월 15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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