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노스텔지어

천사의 밀롱가

먼 숲 2012. 4. 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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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롱가에서

 


박   정   대


 

밀롱가 거리에 바람이 불어요

그대와 함께 하루 종일

밀롱가 거리를 쏘다녔지요

발이 아플 즈음에 저녁이 왔구요

바람에 떠밀려 초저녁별들도 밀려왔어요

우리를 따라온 어둠이 건물에 하나 둘

불빛을 매달았구요


우리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

밀롱가 거리의 이층 찻집에 들어갔지요

군데군데 호롱불이 켜져 있던 마구간 같던 실내

그곳에서 우리는 따뜻한 마유주를 마셨지요

창밖엔 이미 캄캄한 어둠이었는데요

간혹, 그대가 탁자 위 술잔을 채우던 소리는

이미 아름다운 음악이었지요


그해 겨울, 그대와 내가 숨어들었던

밀롱가 거리의 이층 찻집은 우리의 짧은 생애였지요

시끄럽던 중국인 거리의 홍등가를 지나면

문득 나타나던

줄 없는 현악기 같았던 건물 한 채,

그대의 숨결이 내 가슴에 닿아 한 줄기 현으로 이어지던 곳

우리의 사소한 움직임도 고요한 음악이 되어 울리던 곳

악기의 공명통처럼 맑고 투명했던

밀롱街의 이층 찻집

 

 

 

 

 

 

 

 

사월, 바람이 불고 눈비가 와도

꽃이 피고 버들숲이 연두빛으로 물들어간다

아직 겨울옷을 벗지 못한 우리와 달리

들판은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기 시작했다

 찾아가 관심을 갖고 봐야 보이는 작은 꽃들이 봄꽃이다

봄까치꽃, 꽃다지, 냉이꽃같은 자잔한 꽃이 무리를 이루었다

개나리, 조팝나무꽃, 산수유같은 봄꽃도 무리를 이루며 핀다

이렇게 무리를 지어 구름처럼 꽃피는 봄날, 나는 쓸쓸하다

안으로 스미는 밝고 환한 봄바람에 상대적으로 잔영이 어둘뿐이다

나도 무리를 지어 꽃나들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삶은 매여 있다

언제나 삶의 한켠은 빛이 없는 어둠이기도 하다

그 삶의 응달속에서 피아졸라의 쓸쓸한 탱고를 듣는다

천사의 밀롱가

화사한  봄날, 문득 먼 남미의 어둔 도시가 생각이 난다

진한 에스프레소 향기를 꿈꾸며 밀롱가를 거닌다

 

 

 

2012년 4월 5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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