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을 닮다

눈을 속이다

먼 숲 2011. 6. 15. 10:11

 

 

 

 

 

 

 

 

 

 

 

 

 <김대연화가의 포도>

 

 

 

광화문 네거리는 한가한 평일의 오후에도 사방으로 온통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북적댄다

가지가지 구호 정책을 적은 깃발을 날리며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느라 아우성이다

여기저기 무슨 연대라는 깃발 아래 붉은 띠를 동여 맨 단체들이 웅크리고 모여 있기도 하고

주말엔 환경단체의 도보 행진이 거릴 누비기도 하더니 오늘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더위속에 열을 지어 거릴 행진한다

나도 반값 등록금 시위에 참여해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광화문 네거릴 서성거렸지만 마음뿐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가 내년이면 내 앞에 떨어진 불길이라는 이유로

보수적이던 내가 시위대에 동참하고픈 생각으로 울분을 삭히고 있으니

나도 참 이기적이고 비열한 마음이란 걸 숨길 수 없다

수험생 둘을 둔 부모로서 등허릴 휘게 하는 사교육비에 다시 천정부지로 치솟은 대학등록금은

넉넉치 못한 부모로선 삶을 피폐하게 하고 노후라는 걸 생각할 수 없는 짐이고 책임이다

교육에 목숨 건 한국 부모의 욕심을 재물삼아 보란듯이 짓밟고 대학 맘대로 칼을 휘두르는 현실에서 세상이 우울하다

한창 꽃처럼 피는 아이들이 죽어라 공부에 매달리다 대학에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불안감에다

이젠 등록금 문제로 길거릴 헤메는 걸 보면 실로 마음 아프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능력없는 부모로서 가끔 내 안의 울분을 시위하려는 마음으로 혼자 서울 한 복판을 서성거리는 것 같다

 

 

 

■ 2011년 서울 미술대전, 극사실화

 

 

그림 이야길 하려는 시작이 어쩌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사월부터 시작된 그림 전시회를 본다는 걸 깜박하다 어제 오후 시간이 나기에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오는 덕수궁 돌담길에 녹음이 우거져 고목의 나무그늘이 골목을 덮고  

새로 디자인 된 날렵하고 세련된 나무 벤치가 조각품처럼 놓여져 있다

벌써 한여름처럼 더운 오후에 미술관에 들어서니 서늘하게 더위가 식는다. 더없이 쾌적한 피서지이다

 

극사실회화는 1970년대 극단적 추상화였던 모노크롬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해

근래 들어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 환경의 발달로 더욱 극단적인 기법의 극사실 계열 회화로 주목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정물, 인물, 풍경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에 주목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일상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대상의 세부를 확대하고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해 고도로 현실적인 동시에

오히려 그 현실을 뛰어넘을 법한 초현실적인 감각을 얻는다고 한다
새롭게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젊은 작가들은 고화질 영상 매체에 길들여진 세대답게

실재보다 더 선명하고 매끈하게 보이도록 화면을 구성해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소비사회에서 더욱 매혹적으로 비춰지는 오브제와 정물,

실제보다 더 정교하고 적나라한 인물을 미세한 부분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정창기 화가의 자두>

 

 

■ 극사실화 앞에서 자주 눈을 비비고 그림앞으로 다가간다

사진일까?, 그림일까? 아니면 실제의 물체일까? 하는 의문을 안고

사실보다 더 확대된듯한 사실감에 돋보기라도 들이대고 싶고 만져보고 싶다

그림앞에 1미터 정도의 가로막이 없었다면 뻔히 그림인줄 알면서도

저 아름다운 눈속임에 캔버스를 만져보고야 말았을 것이다

사진보다 더 또렸한 색감과 윤기, 살아있는 둣한 질감과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에

사람의 창작성의 한계가 더 없이 감탄스럽고 즐겁다

여러 그림중 정창기 화백이 그린 붉은 자두와 김대연 화백의 푸른 청포도 앞에 서면

달고 새콤한 과일향이 그윽하게 풍겨나며 입안에 침이 고인다

소반에 담긴 빨간 자두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물고 단 과즙을 맛보고 싶다

이슬 맺힌 청포도 한 알 따 먹으며 잎 안 가득 고인 여름을 즐기고 싶어진다 

화가의 완전한 눈속임에 입맛을 다시며 그들의 예술혼에 박수를 보낸다

(여기 올린 그림은 전시된 그림은 아니고 많은 극 사실화 그림중 두 화가의 다른 작품이다)

 

미술관 아치형 창문을 통해 보는 고궁의 초록여름이 그림처럼 눈을 속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눈속임에 현혹된 감흥은 꽃처럼 피어나 강물처럼 흐른다

 

 

 

2011년 6월 15일    먼    숲 

 

 

 

'물빛을 닮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플러가 있는 풍경  (0) 2011.06.20
바다의 아코디언  (0) 2011.06.17
유월 강변  (0) 2011.06.09
법정스님의 의자  (0) 2011.06.03
찔레꽃  (0) 201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