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위한 찻잔
가슴에 엉긴 그리움의 송진 거둬내어 향내나는 청솔불 밝히고 여윈 달빛으로 한밤 내내 아궁이에 불지폈습니다
산안개로 밀어오는 새벽 사윈 숯가마 온기 채 가시지 않은 어둡고도 깊은 가마속에서 그대를 위한 찻잔을 골라냅니다
행여 아픔으로 금간 것 고르고 기다림으로 지쳐 불에 댄 것 고르고 슬픔에 겨워 이지러진 것 고르고 허허로움에 뒤채어 상처난 것 골라 모두 다 내 아픔으로 부딪쳐 깨버립니다
오직 푸른 달빛과 젖은 안개에도 맑은 이슬 고일 수 있는 찻잔 그 하나만을 골라내고 모두 다 버립니다
가슴에 지폈던 불도 식어 이젠 이슬로 우려낸 차 한 잔 그대를 위해 놓고 갑니다
2001.10. 22 일 먼 숲
(사진 : 김선규 기자의 빛으로 그린 갤러리에서)
■ 詩랍시고 쓰고나면 늘 졸시처럼 부끄러워지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거의 십여년전에 문학서재란 곳에 올렸던 글이였는데 묻어두고 살았다 욕심이겠지만 흡족치 못한 점도 있고 나중 블러그에 다시 올려야지 했는데 얼마전 알고 있던 블러그에 들렀다 실명으로 올려진 저 시를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상 여러곳에 이 시가 소개되었던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오래 전 어느 산문집에 실려 있어 옮겨 왔다는 분도 계시니 발없는 詩가 내 집을 나가 여기저기 활개치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보는 순간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의외로 애착도 가게 되는 맘이다 어떤 연유로라도 이미 내 품안에서 떠나 시집간 것처럼 느껴져서인가 보다 이왕 허락없이 이름을 달고 바깥세상으로 나간 글이지만 그저 밉지않게 많은 사랑이나 받았으면 하는 맘이다 하여 부족한 詩를 아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다
2010년 4월 28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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