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위의 休息

먼 숲 2010. 4. 26. 08:27

 

 

 

 

 

 

 

 

 


 

 

 

 

 

  

  

 

 

 

 

 

 

시를 쓴다는 것


  조 영 혜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 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밤 잠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 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쬐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


 

  

 

 

 

  

 

 

 

 

 오월에 개봉한다는 영화 제목이 『詩』다

시를 좋아해 시라는 영화가 보고싶기도 하지만 그보단 왕년의 유명한 여배우 윤정희씨가 나온다고 한다

새까만 교복을 입던 학창시절에 전설같은 트로이카 여배우 삼인방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여배우가 윤정희다

어떤 매력이였는지 모르지만 단아한 멋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변함없이 그녀를 좋아했다

갑자기 피아니스트 백건우와의 결혼과 함께 불란서로 떠났어도 환갑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젊은날의 모습으로 마치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내 마음속의 아름다운 여배우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직도 늘 변치않은 헤어스타일과 긴 스커트에 머플러를 장식한 지적인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녀에게도 자글자글한 세월의 주름과 잔바람을 비껴갈 수 없어 올드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곱고 자연스럽다

그녀를 보면 나도 저렇게만 나이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 본다 

푸르름이 깊어가는 오월에 영화속에서 그녀를 만나고 나도 시처럼, 강물처럼, 바람처럼, 저물고 싶다

 

 

시를 쓴다는 건 어렵다

난 아직도 시의 주체가 무엇인지 몰라 형상을 그리지 못한다

언제나 나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의 마음이 답답하고 한계처럼 느껴저 손을 놓는다

어찌보면 시도 하나의 자유로운 개체고 생명이고 자연인데, 난 그렇게 살려내지 못한다

실없이 문외한의 잡소리만 늘어놓지만 시는 내 삶의 노래라 생각하며 쓰고 싶다

그러나 몇년째 시를 멀리한 채 손을 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일년에 한두권의 시집을 보는 가난한 독자다

요즘들어서는 내 삶을 맑은 앙금처럼 가라앉히고 달게 발효시키기엔 늘 하루의  일상이 버겁다

하여 생각없이 시를 모독하기보단 저 멀리 밀어두고서 사는 게 편하다는 변명을 한다

영화가 어떻게 그려지는 지 모르지만 그녀의 꽃그림자가 시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으로

오월이 오면 물빛 그리움 같은 詩를 만나러 갈 것이다

 

 

 

2010년 4월 26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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