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람이란―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寧日)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비소(卑小)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汚點) 또는 한 잡음(雜音)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마찬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欲望)과 굴욕(屈辱)과 고통(苦痛)과 곤란(困難)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胸中)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주객 일체(主客一體), 물심 일여(物心一如)라 할까, 현요(眩耀)하다 할까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장 무애(無障無碍),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混亂)도 없고
심정의 고갈(枯渴)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愉悅)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汚辱)과 모든 우울(憂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모든 상극(相剋)과 갈등(葛藤)을 극복하고 고양(高揚)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 이 양 하 의 <신록예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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