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사라질 경의선의 건널목 차단기 옆 화단에 자줏빛 나팔꽃 덩굴이 터널을 이루고 피었습니다 봉숭아, 분꽃, 과꽃같은 여름꽃이 한창인 꽃밭앞에서 여름을 지나는 버스는 잠시 멈추어 숨을 고릅니다 건널목 건너 텃밭에선 빈 옥수수대를 거두고 벌써 김장을 심으려 밭고랑을 다듬고 있습니다 치달려 가던 여름의 질주가 코스모스 핀 건널목 앞에서 멈추고 곧 차단기가 올라가면 가을을 향한 파란 깃발이 올라갈 겁니다 햇바람이 부는 아침은 그렇게 초가을의 길목에 섰습니다 습하던 겨드랑이 사이로 선선함이 느껴지고 창을 내다보면 하늘을 가득 메운 흰구름이 자주 출몰합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익어가는 과육의 향기가 전해지고 여름이 지나간 자리는 꾸둑꾸둑 말라가며 젖은 얼룩을 지워갑니다 여름 내 눅눅했던 것들 따가운 햇살에 널어 말리고 바람이 불면 이끼낀 푸른 마음 열어 환기를 시켜야겠습니다 아직 녹음이 어둡지만 들이치는 양광의 그림자가 깊어져 가고 여름이 지나간 자리로 가을 햇살이 낮게 낮게 드리워져 갑니다 무덥고 습해 맥없이 지치게 했던 여름을 보내고 모시그늘같은 초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이제 산산한 가을 바람은 보약처럼 나를 기운나게 할 것입니다
2008.8.23 일. 먼 숲
|
그 곳의 침묵 (0) | 2008.10.13 |
---|---|
鄕 愁 (0) | 2008.09.11 |
라벤더의 연인들 (0) | 2008.08.18 |
흐린 날의 여행 (0) | 2008.08.12 |
아름다운 미소 (0) | 2008.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