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읽는 詩

월 내 역 / 손 택 수

먼 숲 2007. 1. 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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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내 역 

 

 


                              손 택 수


 

달 속에서 파도가 일렁인다. 동해남부선이 가끔씩 철로보다 더 가늘고 긴 여운을 남기며 지나가는 간이역, 지상에서 발톱을 다친 물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역사 가까운 초등학교 쪽에선 풍금소리가 새어나오고, 풍금소리에 맞춰 개망초 달개비 참나리 고만고만한 꽃들이 하교길에 한눈을 팔며 놀고 있다. 돌담 위에선 고양이 수염처럼 빳빳한 햇살 아래 청어가 마른다. 선로보수 작업중 잠시 머무는 동안, 나는 생두부 한 모에 잔소주를 파는 민짜집을 생각하고, 낮게 수그린 처마와 처마가 이마를 맞대고 틈틈이 손을 꺼내어 더운 음식을 주고받는 창문들을 생각한다. 고압선이 지직지직 달 속으로 들어간다. 어부의 집에서 나온 가느다란 길 하나가 낚싯줄처럼 팽팽하게 바다를 당긴다. 바다가 먼저 신호처럼 집어등을 밝히면 응답처럼 집들도 따라 연연히 불을 켜고 둥근 불빛들이 내밀하게 속삭이며 살을 섞는 바다. 밤이면 누군가 배를 띄우리라. 지쳐나는 뭇새들이라도 쉬어가라. 수평선 위에 흐르는 불빛 하나를 내다 걸리라. 그런 믿음은 모두 저 바다 때문이다. 항아리 속에 가득차 출렁이는 바다 때문이다. 그래,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기차? 지금 달의 인력을 어쩌지 못하고 저렇게 푸른 바다를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에 속절없이 귀를 맡기고 있는 것인가. 달 속에서 풍금소리가 잦아든다. 물새들이 느려터진 기차를 따라오다 멀어져간다. 달빛 두 줄기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