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을산행대신 한겨울 스키장에 가보자는 의견으로 몰아진 부서 단합대회의 계획이 십이월이 지나고 제법 영하의 날씨로 추워지자 강원도 홍천의 대명스키장으로 목적지를 정한 뒤 토요일 오후 일찌감치 서울을 탈출한다는 작전으로 출발해선지 다행히 서울을 벗어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T.V에서 보던 스키장을 향해 가면서 마음이 묘했다. 하얀 눈위를 제비처럼 날쌔게 비켜가는 스키어들과 스키장에 벌떼처럼 오글오글 들끓는 사람들을 보고 항상 세상 팔자 좋은 족속들이라고 뒤에서 비아냥대며 꼴 보기 싫어했던 내가 자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팔자 좋은 스키족의 한사람으로 참여하니 뒤통수가 가렵다. 아직 첫눈 한번 펑펑 내리지도 않은 겨울인지라 비록 스키장은 오픈했다지만 인공눈으로 만든 스키장을 가는 기분은 별로 흥분되고 기대되진 않았다.
남한강변을 따라 달리는 강가의 풍경이 제법 시원하고 상쾌하게 느껴졌다. 폭우에 황톳물로 범람했던 여름을 지난 강물은 동해바다처럼 푸르고 싱싱하게 보인다. 가을 단풍으로 화려한 물그림자를 수놓으며 홍조 띤 가을 산과 마주하며 흘러가던 강물이 겨울을 들어서 강은 이미 깊은 사색의 흐름으로 고요하고 투명한 호수가 되어 있었다. 봄, 가을이면 산과 가까이 있던 강물의 거리도 겨울이 되니 산은 산대로 강은 강대로 먼 거리를 둔 채 먹빛의 수도승처럼 등을 돌리고 명상에 잠겨 깊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의 가장자리를 흐르는 남한강을 끼고 가면서 난 무심히 창만 내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마음 한 가운데로 강물이 흐르고 생각은 수척한 겨울 산으로 옷을 벗고 있었다.
한달 전 조상님의 시제를 모시느라 이 길을 갈 적엔 눈에 보이는 산수풍경이 하나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단풍의 절경이었건만 몇 번의 찬바람과 무서리에 조락의 계절을 지난 지금은 황량하고 쓸쓸함의 시작이었다. 주위의 모든 산은 옷을 벗은 채 앙상한 뼈가 보이고, 산속 깊은 곳까지 훤히 치부를 드러낸 채 나무그림자로 엉켜가고 있었다. 하늘이 능선 너머로 뻥 뚫린 듯이 드리워진 겨울산은 갈색 낙엽의 칙칙하고 둔탁한 무채색 유화물감으로 덧 칠해진 풍경화가 되어 스쳐가고 있었다.
그 무채색의 자연을 보고 난 저 갈색 빛깔의 옷으로 갈아 입고 싶단 생각이 든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의 퇴색된 색소를 짜내어 염색한 엷고 부드러운 갈색의 편안한 색깔로 만든 옷이 입고 싶어진다. 인사동에서 보았던 자연염료로 물들인 색상들, 쪽빛, 치자빛, 벽돌색, 황토색, 갈색, 회색빛등의 가라앉은 색상이 저 겨울산과 겨울강의 풍경화에 연하고 진하게 칠해져 겨울은 깊은 묵상으로 잠겨가고, 그 옆에서 난 빛 바랜 갈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나무로 서서 기도하고 싶어진다.
강을 따라 양수리를 들어서자 거울처럼 맑은 강물위로 흘러간 옛 기억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번져간다. 십년 전 즈음 사진에서 보았던 몽환적인 양수리의 안개가 보고싶어 강이 풀리는 이른 봄날 아침 지금 이 길을 버스를 타고 지날 때였다. 자욱하게 피어 오르는 물안개에 갇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생각마저 꿈결에 멈춰 있었고 점점이 철새가 떠있는 안개 낀 강 풍경은 수묵화에 번진 서정 그 느낌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때 생각난 것은 헤르만 헷세의 “안개속에서” 라는 한편의 시 뿐이었다.
그리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여 삼각지가 있는 양수리의 서쪽 산꼭대기엔 “수종사” 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푸른 오월이 시작되는 초여름의 가파른 산을 오르면 강바람이 싱그러웠다. 단청이 칙칙하게 바랜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전 앞마당에 이파리가 시원한 파초 두 그루가 홀로 찾아 온 나그네를 맞아준다. 약수 한 모금 마시고 한적하고 빛 밝은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전망은 감동적이어서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정말로 이 곳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깊고 맑은 강속에서 푸른 종소리가 들리는듯한 환청에 빠진다. 이렇게 양수리는 내가 젊었던 날 뜬금없이 훌쩍 여행을 떠날 적마다 이곳을 거치거나 목적지에 따라 이곳에서 갈라지는 간이역이 되었다.
또한 양수리하면 여름날 우아하게 피어나는 연꽃의 장관으로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연꽃은 꽃봉우리의 소담스런 자태도 곱거니와 은은한 미소처럼 피어나는 만개한 꽃의 모습도 아름답다. 그리고 난 둥글고 넓직한 초록색 연잎의 여유로움이 강물 가득 떠있는 그 평화스런 정경이 더 인상적이다. 모네의 “수련”이란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여름철 양수리의 연꽃을 보면 연이파리 위에 발가벗은 동자로 누워 황금잉어와 얘기하고픈 환상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연꽃이 한창인 그 풍경을 가까이서 보지 못하고 중앙선을 타고 지나치다 보게 되어 늘 아쉬웠다.
지금은 안개도 연꽃도 수면 아래로 잠수한 채 겨울을 보내고 강가의 갈대 숲에선 간간이 철새떼가 날아 오른다. 짧은 겨울 햇살이 비껴드는 양수리의 모래톱에 퇴적되었던 지나간 옛 기억의 풍경은 가물가물해지고 이미 강변을 따라 수없이 늘어선 위락시설의 낯설음이 그 모든 환상을 깨어버린다. 경치 좋은 강어귀마다 무질서하게 들어선 카페들이 강가의 서정을 지워버리고 해가 지면 번쩍이는 야광의 유흥가로 바꿔 놓았다.
전국 방방곡곡 어느 곳이든 멋있고 아름답다고 매스컴을 타면 알려지기 무섭게 자연 그대로의 흔적은 사라지고 러브호텔, 음식점으로 훼손되어 망가지고 오염되어 버리니 이제 숨어있는 비경이 그 어디에 존재할까 ? 이러한 무차별적 개발이 지구의 허파마저 병들게 하는 공범자 역할을 하고 점점 병든 자연은 무서운 재앙을 선사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늘 보게 된다.
그러한 주범의 역할로 스키장, 골프장이 크게 한 몫을 한다는 사실에 스키, 골프족들을 은근히 경멸했지만 실상 속내는 그런 호사스런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경제적인 빈곤의 열등감이 더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어른이 되기까지 아직 오염되지 않은 시골에서 자연의 오솔길을 걸으며 자란 내가 개발이란 목적으로 무책임하게 버림받고 생경한 모습으로 변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름답고 순결한 곳은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일까.
어느새 차는 양덕원 사거리에서 좌회전하고 좁은 산골길로 들어섰다. 추수가 끝난 산골짜기 작은 마을은 인적이 없고 산그림자만 마을 깊숙이 정적으로 덮고 있었다. 뼈다귀처럼 남은 고추밭, 누우런 우거지가 말라가는 김장밭, 일교차가 커서 호프농사가 잘된다는 지형적인 특징을 말해주듯 높은 장대에 맨 줄을 타고 자랐던 호프줄기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겨울풍경도 간간히 스칠 뿐 스키장을 따라 가는 길목마다 여기도 줄줄이 우리가 원조라고 우기며 내건 옥천 냉면집 간판, 까페, 민박집, 순두부집등 그 옛날의 산골마을이 아니다.
길은 점점 능선을 타고 오르더니 이젠 가파른 산 중턱을 잘라내고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가고 있었다. 돈 쓰며 즐기러 많은 사람들이 이젠 인적도 없던 산골짜기를 찾아 들고 산은 허리가 잘리고 심장이 도려내진 채 위락시설로 변해 꾸역꾸역 밀려드는 차량과 사람들의 짓밟힘에 병들어 가고 있었다. 오후의 짧은 햇살이 산마루에 걸릴때 쯤 도착한 홍천의 스키장은 가파른 산 전체를 허옇게 가슴을 드러낸 채 선풍기처럼 생긴 기계에서 품어내는 인공눈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골짜기 한가운데 세워진 고층 아파트 같은 콘도는 산맥보다 더 높고 기운차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생전 처음 스키를 신고 걸음마를 해보고 넘어지고 굴러보다가 겁먹던 난 어거지로 떠밀려 리프트를 타고 초보 코스의 정상에 올랐다. 가파른 이 언덕을 내려 가자니 암담하고 식은 땀이 날 정도였다. 대여섯 번을 나자빠지고 나니 스키를 벗고 걸어 내려 가고 싶었다. 오기로 오른 두 번째 시도엔 천천히 직선이 아닌 거의 사선으로 비껴가며 하강에 성공했다. 정상은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 내려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모든 목적지가 시간과 노력으로 이어진 곡선으로 올라 와서 다시 내려갈 적에도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속도와 흥분과 감정에 제동을 걸면서 불쑥불숙 나타나는 장애물을 피하며 안전하게 내려가는 방법은 스키나 인생이나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된다. 야간 스키를 끝내고 나니 스피드와 스릴을 즐길 수 있는 스키도 좋지만 속마음은 주위의 온 산이 하얗게 폭설에 쌓여 갇힌 이 산골에서 한 사나흘 하얀 겨울산과 마주한 채 명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앞선다. 그러면 마음속에 쌓인 고민과 집착, 불만과 미움의 때가 말끔히 씻어질 것 같았다.
잠자리를 바꿔 자니 밤 새 한 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한 밤을 뒤척이다가 자릴 털고 일어나 아침 일찍 산길을 올랐다. 계곡을 졸졸졸 흐르는 맑은 물이 살얼음으로 얼고 낭떠러지에 언 물은 수정덩어리의 영롱하고 투명한 보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겨울 풍경이다. 벌써 이십년 넘게 겨울을 보내도 수정처럼 빛나는 얼음을 볼 수 있는 일이 드물다.. 무척이나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 오솔길로 접어드니 서리를 맞고 떨어진 다래가 쪼글쪼글하니 오그라든 채 새콤한 향기를 품고 있고 낙엽송 위로 청설모가 부지런히 곡예를 한다. 바짝 마른 낙엽으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작은 바람소리에도 소근거린다.
이미 산은 무성한 옷을 벗고 앙상한 나목으로 갈비뼈를 드러내고, 휭하니 가슴이 보이는 산등성이 어깨너머론 회색빛 하늘이 장삼처럼 걸처저 있는 십이월의 겨울 풍경이 매서운 추위로 굳어져 가고 있다. 첩첩 산중에서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산허리에 앉아 숨을 고르다 보니 구수하고 카랑카랑한 낙엽냄새가 가득하니 묻어오고 계곡에선 흙 냄새와 낙엽 썩는 시큼한 냄새도 겹쳐온다. 먼 산을 내다보니 온 산이 갈빛과 짙은 회색빛으로 가라앉아 있고 구비구비 산맥을 따라 도는 내 마음 또한 엷은 갈색으로 물들어 온다. 아마 저 빛깔은 향수를 느끼는 고향의 빛깔이 아닐지. 아니면 열정과 그리움으로 혼란스럽던 젊은 날을 지난 내 나이에 어울리는 빛깔이어서 일까. 대지의 흙빛을 닮은 겨울 산에 드니 마음이 평화롭고 깊어진다.
화려하던 육신은 다 썩어 흙이 되고 영혼만 남아 고요히 내면의 울림을 듣는 겨울나무는 아름다운 나신의 곡선으로 이어진 능선의 끝에 서 있고, 감정의 기복을 걸러 낸 갈빛의 옷으로 갈아 입은 내 마음은 그리움마저 접어둔 채 편안한 겨울잠을 자려고 한다. 텅 빈 산에서 듣는 바람소리엔 세상사 미세한 소리까지 전해져 왔다가 낙엽이 사라지듯 다시 소리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아마도 소리를 마음으로 들어서인가 보다. 이제 이 산에도 흰 눈이 쌓이면 푸르른 영혼마저 침묵에 덮여 겨울을 날것이다. 해빙이 오고 수런수런 봄 산이 이야기 할 때까지 나도 겨울산처럼 침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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