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 '음악의 일요일들'
이편으로 건너와 처마를 거쳐 지붕에 이르는 동안의 그 시간을 묘사한 듯한 그의 음악은 그래서 혼자만의 젖어 있는 시선을 표시하고 안내한다. 어두워 가는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불빛이 돋아오는 창밖 풍경은 내면으로부터 어떤 음악을 부르는데 그것이 바로 내게는 <세 개의 짐노페디와 피아노 작품> (파스칼 로제 피아노, 데카) 이란 앨범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주 들었다. 음악은 자꾸만 내면의 모퉁이 길을 걸어 나온다. 사티의 음악은 모차르트와도 베토벤과도 다르다. 바그너와도 브람스와도 리스트와도 차이코프스키와도 다르다. 드뷔시와도 라벨과도 쇤베르크와도 다르다. 늘 혼자 있을 때만 들으라는 음악 같아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티 생전에 그의 집을 들어가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상아탑이라고 이름 붙인 파리 교외의 누추한 거리 중심에 있는 한 건물의 3층에 위치한 자신의 거처에서 그는 그 누구의 방문도 허용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 27년간을 혼자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차비마저도 없어서 가끔 파리 시내까지 걸어서 나와야만 했다). 그의 사후에 들어가 본 그의 집에는 구석구석에 쳐진 거미줄과 고장 난 피아노 뚜껑 밑에 감춰진 쓰레기들과 잡동사니들이 가득 메웠다고 한다. 에릭 사티의 내면을 관류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긍지와 자부 대신에 끔찍한 고독이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음악적 실험과 기행과 떠들썩한 스캔들로 점철된 그의 삶의 외적 드라마에 의해 가리어진 그의 내실은 저 무인지경의 황량한 섬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는 해학과 조롱과 익살로 그 암울한 내부를 가리고 스스로 택한 가난과 고립 속에서 쓸쓸하게 살다 죽어갔다. 한때 몽마르트의 예술가들의 회합 장소였던 카페의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작곡한 샹송들은 파리 대중음악에 크게 기여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 제목들을 열거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차가운 작품들> <한 마리 개를 위한 물렁물렁한 진짜 전주곡> <바싹 마른 태아> <성가신 과오> <지긋지긋한 고상한 왈츠> 등등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노시엔>이라니! 그뿐 아니라 그의 악보에는 통상적인 연주 표시 대신 ‘놀라움을 지니고’ 라든가 ‘이가 아픈 꾀꼬리 같이’ 등의 말들이 씌어 있었다고 한다. 창밖 나뭇가지에서 저녁 새가 운다. 눈이 너무 많이 와 먹을 것이 없는 모양이다. 깊이 울림을 주는 음악이다. 이 저녁을 사티라면 어떻게 악보로 번역해 음악으로 만들까. 그리고 어떻게 연주하라고 적어 넣었을까. ‘휘어진 소나무 가지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이라고 적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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