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우두망찰님>
십일월은 꽃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시들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꽃의 뒷 모습은 낙엽지는 나무들처럼 그리 쓸쓸하지 않다 아마도 다음 해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가까운 약속때문은 아닐까 꽃 향기 다하여 마른 꽃대궁만 남아도 꽃 진 자리는 고요로운 꽃그림자가 남는다 그 적막의 자리에 다시 꽃 필 수 있는 약속이 부럽다 꽃은 다시 돌아올거란 초록의 약속과 같이 겨울내내 동토의 시간속에서도 따스한 체온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하여 꽃은 이별하며 떠나는 것이 아닌 잠시 다른 우주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마른꽃의 포자들이 바람에 실려 여행을 떠납니다 새로이 착륙할 신세계에서 마른꽃은 그리움을 전할겁니다
첫 얼음이 얼고 무서리가 내린 아침 옷깃을 여미고 움추리며 가는 아파트 출근길에서 붉은 맨드라미꽃을 봅니다 찬서리에 시들은 노란 소국과도 눈길을 마주합니다 문득 맨드라미 꽃씨를 받아놓고 싶단 생각을 하다가 힘없이 내려놓습니다 몇 년 전 먼 시골에서 받아 둔 탐스런 백일홍 꽃씨도 어딘가 구석에서 버려지고 아직 뿌려보지 못한 묵은 꽃씨가 서랍에 여러봉지 있기도 합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마음의 씨앗도 심지 못하고 버려지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오래전 내 유년의 꽃밭은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삶은 무언가 씨앗을 심고 새싹을 키우는 보람된 과정의 결과는 아니었는지요 그렇게 살아온 일련의 과정이 저뭅니다 그 끝에 십일월의 꽃이 시들고 있습니다 지나치며 본 십일월의 핏빛 맨드라미가 마치 내 모습처럼 마음에 붉습니다
2012년 11월 22일 먼 숲
|
길 끝에 서다 (0) | 2012.12.01 |
---|---|
십일월의 숲 (0) | 2012.11.23 |
이사 (0) | 2012.11.16 |
십일월 (0) | 2012.11.06 |
만추의 오후 (0) | 2012.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