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居를 꿈꾸다

이사

먼 숲 2012. 11. 1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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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십일월, 십칠년만에 이사를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고

나는 늦가을의 세월속에서 황량해졌다

짧은 세월인것 같은데 묵은 먼지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삶의 구석에 켜켜히 쌓여 있었다

단촐한 삶과 가벼운 삶을 꿈꾸지만

살아갈수록 미련처럼 남겨지는 건

불필요한 잡동사니와 늘어나는 살림살이다

복잡해지는 삶의 무게만큼 이삿짐이 불어나

사나흘 버리고 정리해도 반은 버림받은 물건들인 것 같다

먼지속에서 짐을 정리하다 보니

거의 삼십년동안 버려진 추억의 부산물이

퇴적층처럼 하나 둘 드러난다

푸룻하던 내 청춘이 누렇게 빛 바래고

얼룩진 모습으로 낙엽처럼 누워있다

많은 편지와 여기저기 낙서처럼 남겨진 비망록이

추억의 잔해처럼 사과상자속에 묻혀 있다

버려야 할 것들인데도

 난 이번에도 버리지 못하고 이삿짐에 실었다

버려둔 채 묵은 상자속에 있는 추억들이 내 자신이고

지금의 나는 실존인이 아닌 그림자 같았다

그래서일까

곰팡내 나는 누런 추억들을 연민처럼 들추어 본다

여기서 저기로, 과거에서 현재로

순간이동처럼 이사를 했지만

지금 다시보니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 그가 보고싶다

낙엽속에 묻혀진 묵은 세월속의 애띤 그가 보고싶다

아름다운 고뇌와 맑은 영혼으로 앓던

실일월처럼 여위고 가난하던 그가 보고 싶어진다

이렇게 애잔한 추억으로 물드는 날은

몽유병자가 되어 떠돌다

기억의 날개는 새벽속에서 찬 이슬에 젖는다

떠나는 것은 어디론가 돌아가는 시작은 아닌지

서쪽으로 이사한 거실에 노을이 붉다

가끔 나는 석양에 물들어 서해 바다로 떠날 것이다

 

 

 

2012년 11월 16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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