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십일월, 십칠년만에 이사를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고 나는 늦가을의 세월속에서 황량해졌다 짧은 세월인것 같은데 묵은 먼지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삶의 구석에 켜켜히 쌓여 있었다 단촐한 삶과 가벼운 삶을 꿈꾸지만 살아갈수록 미련처럼 남겨지는 건 불필요한 잡동사니와 늘어나는 살림살이다 복잡해지는 삶의 무게만큼 이삿짐이 불어나 사나흘 버리고 정리해도 반은 버림받은 물건들인 것 같다 먼지속에서 짐을 정리하다 보니 거의 삼십년동안 버려진 추억의 부산물이 퇴적층처럼 하나 둘 드러난다 푸룻하던 내 청춘이 누렇게 빛 바래고 얼룩진 모습으로 낙엽처럼 누워있다 많은 편지와 여기저기 낙서처럼 남겨진 비망록이 추억의 잔해처럼 사과상자속에 묻혀 있다 버려야 할 것들인데도 난 이번에도 버리지 못하고 이삿짐에 실었다 버려둔 채 묵은 상자속에 있는 추억들이 내 자신이고 지금의 나는 실존인이 아닌 그림자 같았다 그래서일까 곰팡내 나는 누런 추억들을 연민처럼 들추어 본다 여기서 저기로, 과거에서 현재로 순간이동처럼 이사를 했지만 지금 다시보니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 그가 보고싶다 낙엽속에 묻혀진 묵은 세월속의 애띤 그가 보고싶다 아름다운 고뇌와 맑은 영혼으로 앓던 실일월처럼 여위고 가난하던 그가 보고 싶어진다 이렇게 애잔한 추억으로 물드는 날은 몽유병자가 되어 떠돌다 기억의 날개는 새벽속에서 찬 이슬에 젖는다 떠나는 것은 어디론가 돌아가는 시작은 아닌지 서쪽으로 이사한 거실에 노을이 붉다 가끔 나는 석양에 물들어 서해 바다로 떠날 것이다
2012년 11월 16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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