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자 장(葬)
이 종 섶
우리 부부 죽으면 봉분 대신 나무의자 하나씩 놓아다오 낮에는 햇빛이 놀다 가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잠들다 가고 적적할 땐 바람이 쉬었다 가게
계절이 바뀌면 자리만 옮겨다오 산등성이에 올라 천지에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고 상수리나무 그늘아래 앉아 허벅지 통통 두드리는 도토리 소리도 들어보게
겨울이되면 서로 마주보게만 해 다오 한번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늬 에미가 이제사 불쌍하게 보여서 그러는구나
어쩌다 그런 애비 에미가 생각나거든 새끼들 데리고 한번쯤 다녀가거라
보고 싶었던 손주들을 무릎 위에 앉혀보는 기쁨이 얼마나 크겠느냐
가는길에 의자를 어떻게 놔야할지 묻지말고 너희 좋은대로 하거라 이참에
우리도 자식 놈이 베푸는 호사 좀 누려 볼란다
쓸쓸할까 뒤돌아보지는 말거라 밤낮으로 의자에 앉았다가는 동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지 않느냐
상상만해도 벌써 가슴이 뛰는구나 숲속에 놓여있는 의자 두개 그 아늑한
풍경 속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 다시올문학 2009년 가을호 -

이종섶 시인의 의자장葬을 읽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스해진다
우스개 소리지만, 요즘 다양해진 장례문화에 새로이 이종섶 시인의 의자葬이
대안으로 떠 올라 햇살밝은 언덕이나 풍광좋은 길목 여기 저기에
나란한 빈 의자가 자릴 차지하고 있을 것 같다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처음 이 시를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별에 대한 아픔이
詩속의 한 풍경으로 승화되어 내 생의 한 토막이
조용한 스틸사진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마 내 생도 가을이 깊어지고 어느날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가 자연스레 자릴 잡아
가끔은 내가 죽으면 나의 장례절차는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해서인지 모른다
묘는 쓰지는 않을거고, 화장을 한다지만, 욕심엔 어디 작은 비석이라도 남기고픈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비록 영혼이 살아있다 해도 그것은 나를 아는 자식이나
가까운 벗이나 이웃들의 기억에 잠시 머물 뿐, 바람일지, 물일지, 공기일지 나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영혼은 내가 사랑한 사람들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란 유한성에
장례의식조차 모든 게 부질없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 의자장葬을 읽고 나니
나도 이시인의 詩처럼 내 영혼이 쉴곳에 작은 의자 하나 놓고 싶어진다
햇살이 깊은 곳은 노을도 깊고 아름다울 거고, 나는 바다가 보이는 곳보단
나무와 꽃과 벌과 나비가 있고, 작은 산짐승이 놀러 오는 숲이 좋을 것 같다
난 오늘 가을 숲 한 켠에 나무 의자 하나 놓고
붉어지는 단풍을 바라보며 이 詩를 음미해 본다
추석이 지난 후 아는 인연이라 이 종섶 시인을 잠시 만났다
찻잔을 마주 놓고 이야기 하며 마음속으론 이 다음 내 의자가 있는 곳에
이렇게 맑고 편안한 시인도 자주 놀러 왔으면 하는 바램도 해 본다
이 자릴 빌어 이종섶 詩人의 건필과 안부도 전해 본다
2009.10. 16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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