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성북동 가을길

먼 숲 2008. 10. 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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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가보고 싶던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을 개관 첫날 들렀다

일년에 봄 가을로 두 번 전시를 하곤 일반인 출입을 금해서인지 그 곳을 가기 쉽지 않았다

관람을 하려고 백여미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도심의 외곽이라 할 수 있는 성북동 골짜기의 가을은 깊어가고 파란 하늘이 고적하다

아쉽게도 미술관 주변의 고풍스런 정원과 풍광은 그윽한데 전시실이 비좁고 낡은 누옥이다

우리 나라의 보물인 많은 국보급 그림과 글씨가 소장된 미술관이 개인 소장이라선지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 나라 문화를 비춰보는 거울인진데 너무 낡고 초라하다

조상이 물려준 많지 않은 귀중한 유산을 너무 허술하게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좀 더 넓고 쾌적한 전시공간에서 격조높은 우리의 고미술을  천천히 보고 감상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도 처음 대하지만 신윤복의 미인도가 이번 전시의 백미인 것 같다

풀먹인 모시옷의 고아함과 섬세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신윤복의 곱고 세밀한 필치와 색감은

요즘 회자되고 있는 드라마에서처럼 화공이 여성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게 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그림은 작지만 아주 세밀하고 사실적인 겸제 정선의 표충도다

 겸제의 고풍스런 진경산수만 보다 수를 놓은 듯한 세밀한 표충도를 보니 경이롭게 느껴졌다

마치 현미경을 보고 그린듯한 곤충의 투명한 날개는 건드리면 금방 날아갈듯 살아있고

자연스런 풀빛 색감과 명암이 요즘 그려진 세필화보다 더 곱고 섬세하여 감상자의 시간을 초월케하였다

대원군 이하응의 글씨는 명필이라 들어 짐작했지만 그 필치가 강인해 보이고 멋스럽다

그러나 나는 정조의 글씨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말았다

한눈에 휘어잡는 글씨만 보고도 정조의 인품과 그의 재능이 가히 귀재였으리라 짐작케 한다

일필휘지의 서체가 바람처럼 날렵하고 시원하며 자유스러운 듯 반듯하고 품위가 있다

혜경궁 홍씨의 단아한 글씨와 나란이 감상하며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굳건한 의지와 재능에도 불구하고 비운의 왕이 되었지만

오래 살았다면 세종 못지 않은 성군이 되었을 거라 생각될 만큼 글씨가 살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전시자료를 좁은 공간에서 사람에 밀려 여유롭지 못하게 보는 것이 아쉬웠다

봄 가을로 두 번 개관하는 귀중한 전시가  이 번 주말에 끝난다고 했다

가을에 감상하는 고미술의 정취는 그윽한 국화향기를 음미하는 것 같다

호젓한 가을길에서 만나는 우리의 고미술 관람을 늦게나마 권하고 싶다

 

 

   

 

 

미술관 앞뜰의 파초가 청빈한 선비의 도포자락처럼 여유롭고 청청하다

아직 여름이 저 파초잎처럼 펄럭이는 것 같은데 뜨락 가득 가을이 깊어간다

제대로 가꾸지 않고 화분에 산만하게 심어진 가을화초들과 산국에 석류가 가을 향기를 더한다

주렁주렁 열린 홍시가 꽃보다 아름다운 미술관 뒷 뜰을 돌아 언덕을 내려와 성북동길로 접어 들었다

올려다 본 북한산자락에 둘러 친 오랜 성곽의 모습이 수도의 옛 자취로 남아 고즈넉해 보인다

한적한 변두리의 성북동길은 하늘로 오르는 계단처럼 마주치는 가을 하늘이 가찹다

길을 오르며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읽혀진 채석장이 있는 달동네를 생각했지만

선잠로를 들어 선 성북동 길은 두터운 담장으로 둘러 친 부촌으로 가는 길이다

조용하고 볕 밝은 산 아래라선지 수도자들의 쉼터가 여럿 보이고 대사관들도 많은 것 같다

언덕을 오르는 길가 담장의 작은 화단엔 삼색 홑겹의 백일홍과 나팔꽃, 채송화가 아기자기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오르니 유럽풍의 고풍스런 성당이 산비탈 아래 아름답다

성당에 버금갈만큼 멋스런 저택들이 즐비한 언덕길을 잠시 올려다 보며 어리석게도

공연히 높은 곳에 사는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들어 심통을 부리니 내가 참 못나 보인다

산을 오르는 골목길로 푸르른 가을 하늘이 꽉 들어차는 언덕을 따라 오르면

유명한 요정에서 마음을 닦는 맑고 향기로운 도량으로 바뀐 길상사가 있다

길상사의 회주로 계신 법정스님은 불일암 시절부터 내 스스로 마음을 비춰보는

마음의 스승이기도 하여 길상사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울창한 수림으로 이어진 산자락에 있는 길상사는 참선 도량답게 단아하고 청정해 보인다

계곡은 고요로워 가을볕이 사찰 마당에 그윽한 만큼 적요로움의 그림자도 깊다

마음같아선 노곤한 속세를 벗어 버리고 바람 소리 따라 명상에 들고 싶다

속세가 시끄러워 다들 그러하거니 모르는 척 하면서 살려 해도 마음 밖이 소란하고 혼란스러우니

속마음도 날마다 불안하고 허허롭지만 휴일도 없이 일하다 보니 심신이 노곤한 요즘이다

한달내내 편히 쉬지 못한 채 지치게 일하고 겨우 오늘 하루를 모처럼 꿀맛같은 휴일을 보냈다

가을바람과 함게 해찰하는 성북동의 가을길이 삶의 한 켠에서 깊어지는 그리움을 추억케 한다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뜬구름같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해 헤메이는 마음이

수시로 낮달이 산마루에 걸리는 외곽의 가을길을 걸으며 가벼워진다

나는 오늘 가슴에 금이 간 성북동 비둘기가 되어 산동네의 하늘을 배회한다

 구름처럼 평화로운 순례의 길을 떠나고 싶은 가을의 간이역에 서서 단풍지는 먼 산을 응시한다

 

2008.10.21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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