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읽는 詩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먼 숲 2007. 10. 17. 10:08

 

 

 

 

 

 

 

 

 

 

 

 

 

 

 

 

단풍드는 날

 

 도 종 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방하착(放下着)

방하(放下)'는 놓아 버리는 것,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하며 '착(着)'은 명령의 의미를 나타내는 조사이다.  방하착(放下着)은 내려 놓으라'는 말이다. '방하착'은 삶과 죽음, 고통과 즐거움,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자기와 남의 상대적인 관념을 완전히 내버리는 것이다. 그 내버린다고 하는 관념마저도 없애라는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욕심이 없다' 등등 스스로 이미 초탈한 듯이 생각하는 것마저도 버림, 즉 덜 떨어진 생각마저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삶과 죽음, 고통과 쾌락의 짐을 진 채 끊임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이다.

 

가을이 깊어가서인가, 모처럼 한가한 퇴근길 저녁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知人을 만난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세종로 앞에 서니, 교보문고 커다란 간판 그윽하게 아름다운 싯구가 보인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아직 광화문의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들지 않았지만 저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음에서 불붙는 나무를 본다. 갑자기 온몸을 불태우듯 붉게, 노랗게 물드는 가을나무의 아름다운 시계(視界)가 다비장(茶毘葬)보다 더 장엄하고 숭고해 보인다. 버려야 할 것이 무언지 아는 순간.... 어느날 나는 모진 집착의 미련을 버리고 나무처럼 아름답게 불탈 수 있는지, 그 순간을 깨닫기나 할런지 미혹한 나로선 그런 생각도 욕심이겠지. 방하착!, 마지막 잎새처럼 깨달음의 화두가 화살촉처럼 날아와 서 있는 발 끝에 머문다.

 

2007.10.17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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