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의 여백
여름의 강가에서 부서진 햇빛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수면 위에 떠도는 아지랑이를 타고 동화가 들려올 것 같다. 물장구를 치며 나체로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본다. 그리고 천진했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가 감미롭고 서글프게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치스치는 여름 강바람 - 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는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그럴때 나는 물이 주는 푸른 영상에 실려 막걸리를 사랑해 본다. 취한다는 것, 그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악의 없이 노출되는 인간의 본성을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이기적인 내적 갈등과 감정의 긴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경에 찬 아름다움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 가로 놓인 우울한 함정에서 절망 대신에 긍정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절실한 정신의 휴식인 것이다.그렇다, 취하여 걷는 나의 인생의 긴 여로는 결코 삭막하지 않다. 그 길은 험하고 가시덤불에 쌓여있지만 대기의 들장미 향기가 충만하다. 새벽 이슬을 들이마시며 피어나는 들장미를 꺾어들고 가시덤불이 우거진 인생의 벌판을 방황하는 자유는 얼마나 아프고도 감미로운가! 의식의 밑바닥에 잔잔히 깔려 있는 허무의 서글픈 반주에 맞춰 나는 생의 환희를 노래한다.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곳에 몰아 세워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욕망과 불시과 배타적 감정등을 대수롭지 않게 하며, 괴로움의 눈물을 달콤하게 해주는 마력을 간직한 것이다. 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 뒷산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바람이 나의 전신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석양의 정적이 저멀리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수면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저멀리 노을이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장욱진의 산문집 "강가의 아뜰리에"중에서>
<풍경 / 1988 / 캔버스에 유채 / 40.5x30.5> <소와 나무 / 1978 / 캔버스에 유채 / 34x25 >
<밤과 노인/1990/캔버스에 유채/32 x 41 cm > < 나무와 새/1957/ 캔버스에 유채/34 x 24 cm>
■ 이월의 끝, 밤에 봄비가 온다는 주말 오후, 일찍 일이 끝나 삼청동 미술관 관람길에 나섰다. 경복궁 옆 줄지어 선 미술관길은 봄빛처럼 햇살이 화사했다. 몇군데 미술관과 학고재를 들러 현대 미술관에서 열리는 장욱진 20주년 기념전시회를 보았다. 장욱진의 그림을 무척 좋아하지만 도록이나 사진으로만 보았지 개인전에서 직접 그림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좁은 소견을 장욱진과 그의 그림을 말할 수 도 없지만 이미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등 한국 현대미술의 추상화처럼 장욱진의 그림 또한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일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그의 그림이 너무 작다는 것에 놀랐다. 여직껏 대부분 거릴 두고 넉넉한 행보로 그림을 보곤했는데 그의 그림은 촘촘한 간격으로 그림책을 보듯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대한다. 그 때는 가난했던 시절들이기에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겠지만, 그림을 선물하면했지 자신의 그림을 팔지 않으려는 그의 돈에 대해 욕심없는 마음은 큰 그림을 그리려하지도 않을 성 싶다는 생각으로 손바닥만한 크기에 기껏 큰 그림이 A4용지만한 작은 그림크기에 대한 답을 혼자 내려본다.
오직 그림에 모든 생을 소비하며 술과 자연을 벗삼던 그의 奇行은 마치 도인처럼 느껴지게 했지만 그의 그림에서 보는 아이같은 순수함은 불가사의하게 보여진다. 보여지는 그림마다 민화에서 보여지던 옛날 이야기나 어릴적 동화속에 나오는 그림같아 그 작은 그림속에서 오래전 유년의 추억과 향수, 그리고 내가 살던 마을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심플하다" 며 욕심없이 자연처럼 살다간 장욱진의 단촐한 삶의 이야기가 그림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화가는 구름이나 나무가 되기도 하고 마을 동구밖에서 까치가 되어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옛날 이야길 하거나 착한 소들과 눈을 맞추며 정자에 누워 바람소리를 듣기도 한다. 장욱진의 정다운 그림소재들인 나무와 동산, 소와 강아지. 해와 달, 까치와 참새, 아이들과 노인, 초가와 정자등, 그 단순한 풍경들이 더없이 정겹기도 하지만 그의 그림들은 내게 끝없이 순수한 동화를 들려준다. 그러나 늙지않는 그의 세월도 마지막 그의 유작이라는 "밤과 노인" 이라는 그림속에서 끝나고 그 함축된 그림속에 장욱진의 인생이 그려져 있다. 잠시 마지막 그림앞에 머물러 도인같은 그를 추억해본다. 바람처럼 하늘로 사라지는 그는 지금 달나라에 가 있을까?.
장욱진의 그림은 청빈한 선비의 안빈낙도를 그리고 있는 듯 싶다. 푸른 오월, 높다란 미루나무위의 안락한 까치집에서 보는 세상처럼 그의 그림속은 평화롭고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난 언제 내 삶이 심플해질 수 있을까. 생의 복잡함이 당연한 듯 살아 온 지금, 나도 단촐하고 깨끗한 삶, 심플하다는 삶을 그려보고 싶다. 허나 소인인 나는 온갖 근심과 욕심에 매달려 늘 곤곤한 일상을 산다. 허허한 마음으로 전시회를 다 보고서 생전 처음 그림 한 점을 샀다. 판화로 파는 그의 대표작 "나무와 새" 라는 그림을 욕심내서 거금 십오만원을 주고 사고나니 나만의 가보를 얻은 듯 마음이 참 부자다. 이 담 어느날, 내 삶이 조금은 정리되어 내 앉은 자리가 단출하니 고요로워지면 그의 그림을 벽에 걸고 마주하리라. 그리고 그의 그림처럼 나도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해가 되고 달이 되고 자연이 되어 남은 날들을 단순하게 마름질하고 싶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생인데 뭐 그리 무겁고 복잡한지 모르겠다. 내 삶이 가볍고 단순해지는 먼 흣날, 구름 한조각 내 창가에 머물고 있으리라.
2011년 2월 28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