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의 여백

모딜리아니 1

먼 숲 2008. 3. 13. 15:50

 

 

 

 

 

 

 

 

 

 

 

 

 

 

 

 

 

 

 

 

 

 

 

 

 

 

 

< 모딜리아니 그림자료 /http://www.iszzuni.com.ne.kr/>

 

   

 

■ 운동장가로 벚꽃이 휘날리던 중학교때 미술시간이였던가

미술선생님이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여인의 초상화를 보여 주시고

모딜리아니가 병으로 일찍 죽자 애인이 파리의 아파트에서 따라 자살했다는

애절하고도 슬픈 사랑의 이야길 잠깐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소설같은 이야기때문이 아니라 블루아몬드같은 눈과 긴 목이 처량한 여인의 초상은

그 당시 내게 아주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지금껏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고흐의 강렬한 그림보다도 슬픔으로 기운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모딜리아니의 여인들은 그 이후로도 권진규의 테라코타나 천경자의 길례의 언니로 이어져

내 마음의 캔버스에 그늘진 恨과 외로움, 고독한 눈빛과 공허한 心像으로 이어져 왔다

세월이 참 많이 흘러 삼십오년 전 처음 본 신비로운 여인의 초상을 휴일 봄날 오후

가까운 아람누리 미술관에서 <열정, 천재를 그리다>란 주제로

모딜리아니와 그의 애인 쟌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의 전설을 그림으로 처음 만났다

 

훗날 청승맞은 그림을 그린 모딜리아니가 아랑드롱보다도 더 멋지고 잘 생겼다는 걸 알았지만

전시장 입구에 붙여진 모딜리아니와 쟌느의 포스터는 너무 멋진 모습이라 영화 포스터 같았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만나는 설레임이 컷는데 전시회는

스물두살의 나이로 사랑하는 애인의 죽음을 뒤따라 팔개월된 뱃속의 아이를 안고 자살한

모디의 애인 쟌느의 그림과 두 사람의 불행한 사랑에 더욱 밝은 조명이 비춰지고 있었다

사실 난 모딜리아니가 그린 많은 여인의 초상중에 쟌느가 있었다는 것만 알았지

열정적으로 모디를 사랑하고 기어코 그를 따라 간 쟌느가 화가인지는 몰랐었다

 병약하고 자유로운 천재적인 모딜리아니를 열여덟의 소녀가 알아보고

스승과 애인으로서 불꽃같은 영혼으로 사랑했다는 두 사람의 슬픈 소설같은 그림들이

백년이 가까운 시공을 넘은 세월의 자락에서도 아직 식지않은 뜨거운 열정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쟌느가 잠자는 모딜리아니의 모습이나 병들어 누워있는 어둔 모습을 그린 스케치와

행복한 시간도 잠시, 쟌느가 모디의 죽음을 예감하고 그 불안한 상태에서 그렸던

"죽음"이나 "자살"이란 제목의 섬뜩한 그림들은 이미 그녀도

사랑하는 모디를 따라갈 것을 다짐했을거란 생각이 드니 참으로 가슴아팠다

 

정발산의 나즈막한 숲이 봄볕으로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봄날 오후

애달픈 사랑의 전시장을 나서는 난 마치 한편의 슬픈 영화를 본듯 하다

모딜리아니가 그렸던 퇴폐적 슬픔의 목선과 눈동자가 생략된 아몬드형 눈매는

처연하고 신비롭기도 하여 오히려 동양적인 모습이였는데

모딜리아니의 화풍과 인상적인 그림세계를 이해하기보단

 "천국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쟌느 에뷔테른이라는

모딜리아니의 마지막 연인의 사랑에 감전되어 그 아픈 사랑만 기억하게 되었다

진실한 예술은 그 사람의 혼을 그리는 걸까

모딜리아니가 그린 화려하지 않은 여인들의 초상에 드리운

유곽의 여인들의 슬퍼보이지만 거짓없는 모습의 그늘과 애상에서

드러내지 못한 자신의 숨겨진 고독과 외로움이 흘러 내리는 것 같다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듯 몽환적인 상념을 안고 전시관 뒷산의 산비탈을 오른다

아직 꽃이 피려는 기미는 미력하지만 봄볕이 눈부시다

한 때 사월의 꽃그늘 같았던 모딜리아니와 쟌느의 사랑은 이젠 잊으련다

예술의 혼은 영원한 것인지 백년이 가도 지워지지 않는

한 예술가의 아픈 사랑과 삶은 짧은 봄바람같았어도 그들이 그린 그림은

사랑의 밀어와 슬픔을 머금은 채 아직도 우리 가슴에 살아있다

붉은 제라늄이 피어있고 삼월의 봄볕이 비껴드는 낡은 아파트 창가에서

모딜리아니의 여인들은 그리움에 기운 목선을 드러내며 밖을 응시하고 있다

가끔 한 예술가의 인생이 조명되는 큰 전시회를 보면

내 인생을 전시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한다

길을 걸으며 생각해 보니 순탄하다고 할 순 없지만 참 초라하고 보잘것 없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더라도 살아 있는 지금의 시간이 중요하지 무슨 소용있을까

난 어설프지만 지금도 내 생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시 새 봄을 맞은 현재의 이 순간이 참 아름답다

 

동백꽃 그늘 아래 모딜리아니. 쟌느. 두 사랑의 이름을 묻다

 

2008.3.14일   먼    숲

 

 

 

 

모딜리아니(1884~1920).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