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아래
이 정 록
제비가 다녀갔습니다 제비알 작은 무늬들이 다녀갔습니다 새끼제비들의 빨간 입천장이 다녀갔습니다 화상연고 같던 새끼제비의 똥구멍이 다녀갔습니다 어미부리에 잡혀온 벌레들은 힘찬 날갯짓이 되어 돌아갔습니다 처마 밑 제비집을 바라보던 노부부의 눈길은 남아 있습니다 처마 아래 두 접 마늘처럼 바싹 말랐습니다 대처 아파트 베란다로 알 굵은 일곱 접이 떠나고 잔챙이 두 접만 남아있습니다 양파 다섯 접 중 세 접도 함께 트렁크에 실렸습니다 옥수수와 마늘이 다녀간 자리에 메주와 곶감이 처마를 당기고 있습니다 곶감도 곰팡이 슨 것만 남아 틀니 어루만지는 겨울밤입니다 쌀독 홍시도 떠났습니다. 메주는 뒤뜰 항아리 속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녀석들도 나중에 어둔 항아리를 벗어나 휘황한 도시로 갈 겁니다 산토끼 쓸개와 익모초와 씨앗망태만 남았습니다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고 창끝을 세운 고드름들이 겨우내 수정빗장 걸어주었습니다 양철치맛단의 올이 자꾸만 풀립니다 처마 그림자가 못 꼬챙이 많은 기둥을 톱질합니다 텃밭 마늘 싹이 창끝을 흉내 내며 솟아오르는 봄입니다 고드름처럼 녹아버리지 말자고 아린 독 품습니다 다시 제비 돌아왔습니다. 제비꼬리며 날갯죽지도 대장간을 다녀왔는지 날카롭게 빛납니다
(시선) 2007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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