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 2008. 2. 26. 09:31

 

 

 

 

 

 

 

 

 

 소근소근 눈이 오는 밤길을 걸어 오고

소복소복 눈이 쌓인 아침길을 걸어간다

춘설이 가비얍게 쌓이는 밤의 설경은

푸른 가로등빛에서 보면 꿈결같은 설국이였다

불빛에 반짝이는 흰눈의 결정체가 보석처럼 빛나고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보드랍고 달콤한 것 같아

순결한 아름다움에 발자욱을 내기가 미안할 정도다

공원길 영산홍 꽃밭에 만발한 설화는

흰 목화송이처럼 탐스럽고 앙증맞았다

 

눈이 온 아침은 고요한 산촌같았다

문을 나서니 주차된 차들이 두꺼운 솜이불을 쓰고

 단잠을 잔듯 조금씩 눈을 떨구고 기지개를 펴고 있다

 푸라타너스 나목과 잣나무에 핀 설화가 장관이다

슬적 바람이 불적마다 날리는 눈보라를 맞으며

소복히 쌓인 눈길을 걷는 촉감에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

유리창을 말갛게 닦은 듯한 개운한 기분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 본 삭막했던 아파트 숲이

모처럼 북유럽의 설경처럼 평화스런 정취를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제 겨울과 이별하는 마지막 눈의 축제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불편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자연이 준 가장 고마운 축복이 아닐까

넉가래로 눈을 밀며 마을과 마을, 가까운 이웃간의 길을 내고

댑싸리 비로 마당의 눈을 쓸며 눈사람을 만든지가 언제였던가

요샌 때 아닌 폭설이 재앙이 되어 고통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이젠 그 원인이 하늘탓이 아님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봄눈 녹듯이 오늘의 눈부신 설경도 며칠새로 사라지겠지만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준 춘설의 풍경이

간만에 메마른 가슴을 풍요롭게 한다

춘설이 촉촉히 녹는 대지 위로

소롯 이라는 움 하나 내밀어 본다

 

 

2008.2.26 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