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 雪
소근소근 눈이 오는 밤길을 걸어 오고 소복소복 눈이 쌓인 아침길을 걸어간다 춘설이 가비얍게 쌓이는 밤의 설경은 푸른 가로등빛에서 보면 꿈결같은 설국이였다 불빛에 반짝이는 흰눈의 결정체가 보석처럼 빛나고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보드랍고 달콤한 것 같아 순결한 아름다움에 발자욱을 내기가 미안할 정도다 공원길 영산홍 꽃밭에 만발한 설화는 흰 목화송이처럼 탐스럽고 앙증맞았다
눈이 온 아침은 고요한 산촌같았다 문을 나서니 주차된 차들이 두꺼운 솜이불을 쓰고 단잠을 잔듯 조금씩 눈을 떨구고 기지개를 펴고 있다 푸라타너스 나목과 잣나무에 핀 설화가 장관이다 슬적 바람이 불적마다 날리는 눈보라를 맞으며 소복히 쌓인 눈길을 걷는 촉감에서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 유리창을 말갛게 닦은 듯한 개운한 기분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 본 삭막했던 아파트 숲이 모처럼 북유럽의 설경처럼 평화스런 정취를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제 겨울과 이별하는 마지막 눈의 축제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불편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자연이 준 가장 고마운 축복이 아닐까 넉가래로 눈을 밀며 마을과 마을, 가까운 이웃간의 길을 내고 댑싸리 비로 마당의 눈을 쓸며 눈사람을 만든지가 언제였던가 요샌 때 아닌 폭설이 재앙이 되어 고통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이젠 그 원인이 하늘탓이 아님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봄눈 녹듯이 오늘의 눈부신 설경도 며칠새로 사라지겠지만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준 춘설의 풍경이 간만에 메마른 가슴을 풍요롭게 한다 춘설이 촉촉히 녹는 대지 위로 소롯 봄이라는 움 하나 내밀어 본다
2008.2.26 일 먼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