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프라타너스 밤길을 가며

먼 숲 2007. 11. 16. 09:40
 
 
 

 

 

 

    

 

 

 

 

 

아침저녁 사계절 저 프라타너스 터널길을 오고 간다

오가는 동안 생각의 순간들도 시시각각 변하고 되돌면서

종내 집으로 향하는 멀지도 않은 세월의 굴레를 돌고 돌았다

프라타너스는 늦 봄 새순 돋는 파릇한 길도 좋았지만

너른 잎들이 무성해 터널 숲을 이룰 때가 참 깊고 넉넉하다

작년부턴 자주 자정이 넘은 시각 이 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각엔 멀지 않은 길이 어둠에 잠식당해 어렴풋 소실점을 만들고

여름을 지나서부턴 아득해지거나 깊고 어두워진다

 

가끔 안개속에 가려진듯 모호해진 길 끝에선

또 다른 내가 걸어오는 듯 환각에 빠지기도 하고

그림자와 걷는 밤길에선 비로소 내 존재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 길을 걷는 동안은 짧은 거리이지만 하루의 반환점이 되어

아침이면 공원의 나무와 새들과 화단에 핀 꽃들의 느낌을 보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출발하기도 하고

저녁길에선 이런 저런 생각을 조용히 정리하기도 한다

여유로운 산책길은 아니지만 날마다 오가는 길이라

잠시나마 길가의 소소한 변화와 표정을 살피기도 한다

 

얼마 전 자정이 가까운 시간 이 길을 가는데

라디오 FM에서 마할리아 잭슨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여름에 듣던 그 노래가 만추의 계절에 촉촉하게 젖어 드니

마치 철지난 바닷가를 거니는 쓸쓸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깊은 가을밤의 프라타너스 길이 애수의 향기로 그윽해진다

가끔 길을 가다 그렇게 좋은 음악에 심취하다 보면

목적지보다 더 멀리 느린 걸음으로 가고 싶어진다

 

비록 그날처럼 한순간 분위기에 젖는 노래에 감동해

쉽게 행복해하지만 그 얼마나 혼자만의 농밀한 감정인가

 종종 이런 감정의 굴곡이 너무 변덕스런 건 아닌가 생각도 하지만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변치않는 감정만의 연속이라면

얼마나 건조할까 하는 공연히 자조적인 헛소리도 해본다

그날처럼 낙엽이 서걱거리며 뒤척이는 밤길을 홀로 걷다

마할리아 잭슨의 깊은 울림이나 이브 몽땅의 멋진 샹송을 듣는다면

객쩍은 소리지만 현실을 이탈한 낭만적이고 멋진 밤이 아닐까

 

십일월이 깊어가는데 겨울이 더딘 듯

아직 옷을 벗지 못한 늦가을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러나

곧 찬바람이 불고 허허로운 나목의 겨울길이 될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 따스한 호박빛 가로등 은은한 프라타너스 길을

유치하지만 슬몃 옷깃을 세우며 낙엽을 밟는

고독하고 쓸쓸한 로맨티스트가 되어 걷고 싶다

무서리가 내린 그 길을 종종거리며 오가는 동안

 겨울은 또 다시 깊은 동면에 들 것이다

 

2007.11.16일.   먼     숲 

 

 

 

  

                         <네이버 블러그 나무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