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황야의 무법자 먼 숲 2007. 4. 18. 09:46 축포처럼 터지던 봄꽃의 축제도 하얗게 화염처럼 사라지고 연녹색 생명의 푸르름으로 물들어 가는 요즘이다. 봄은 가장 낮은곳에서 높은곳으로 서서히 대지의 체온을 옮겨가며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평화로운 행진을 계속하는 데 느닷없는 총성의 피묻은 뉴스가 온 세계를 경악케하는 아침을 맞이하였다. 근래엔 자주 기가 막히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라 웬만한 뉴스엔 면역이 되어 놀라지 않게 되어선지 경악할 뉴스를 접하고도 놀라지 않는 마음의 강도를 표현키 어렵다. 전쟁도 아닌 평화로운 학교에서 33명이란 꽃다운 젊은 목숨이 총에 맞아 허탈하게 죽어갔다니 기막힌 일이다. 아직도 세계 여러곳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행해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도 쉽게 잊혀져 가지만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일어 난 사건이고 그 사건의 주인공이 한국교포라니 뉴스에 둔감한 척 외면하고 사는 나도 심사가 어지럽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세상이 점점 포악해지고 흉악해지는 범죄의 강도도 무섭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짐승보다 못하게 타락한 죄의식과 엄청난 죄악에 대한 불감증이다. 도대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자들의 도덕적 무감각증의 증세를 보면 내 자신도 무섭고 모든 사람이 무섭다. 너도 하는 데 내가 못할 게 무어냐는 식의 사회적 불감증이 보이지 않게 나에게도 전염되는 것 같아서다. 얼마 전 "엘리펀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미국의 하이스쿨 총기 난사 사건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미국 우화에 "집안에 있는 코끼리"란 것이 있다고 한다. 집안의 코끼리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집이 무너질 테니까 잠재된 위험이다.라는 뜻에서 그 영화에 엘리펀트라는 제목을 붙였나 보다. 그 영화를 보면서 어린 학생들이 조용히 범행을 계획하고 쉽게 총기를 구입하여 컴퓨터 게임하듯 범행을 연습하고 친구와 스승을 어린애들 총싸움 하듯이 조준하고 사격을 하는 걸 보고 미국이란 나라가 참 썩었다 생각했는 데 다시 이런 엄청난 사고를 접하니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예견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집 안에 있는 코끼리의 주인공이 비록 미국 영주권을 가졌다지만 아이러니하게 하필 한국인이란 말인가. 불변하는 세습체제로 권력을 쥐고 흔드는 북한이 여전히 지구상의 악질로 회자되는 것만도 같은 핏줄인 한민족이란 게 억울한데 참 씁쓸한 심정이다. 그러나 비록 그런 사건이 터졌다지만 사람이 총에 맞아 죽은지 두시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더 많은 사상자를 불러오게 한 미국이란 나라가 과연 최첨단의 과학이니 하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공룡같은 힘을 가졌다 할 수 있는가. 조금만 일찍 사건을 해결했다면 그런 치욕적인 사상자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나 그런 범죄는 가능한데 그 긴 시간의 공백으로 인해 맥없이 수십명으로 사상자가 생겼다는 게 너무 아쉽다. 정말 한창 꽃처럼 피어 날 젊은이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오래 전 중학교 시절, 한 때 황야의 무법자 같은 서부영화에 빠진 적이 있다. 낡은 가죽 재킷이나 판쵸의, 모자를 쓰고 시가를 문 채 총을 쏘던 존 웨인, 크린트 이스트우드와 야성적인 여배우로 캔디스 버겐 같은 배우가 나오던 서부영화를 보면서 전광석화 같은 총잡이들의 멋스러움이 영웅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분명한 선과 악이 있어 멋진 총잡이들에 의해 악인들을 파멸시키던 쾌감을 즐기면서 그 정의로움에 황야의 무법지대가 오히려 평화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휘파람을 불며 바람처럼 말을 타고 사라지는 황야의 무법자들의 전설이 이어져 오던 신 개척지의 미국이 결국 어디서나 총질을 해대는 원시적인 모습을 역사처럼 이어가고 있는 지금, 새삼 그들에겐 총소리가 놀랄 일도 아닐지 모른다. 젊은 시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한 나라가 적과 대처한 꼴이 되어 군 삼년을 총소릴 듣고 사격연습을 한 처지지만 우린 총으로 토끼 한 마리 잡지 못했는데 슈퍼에서도 총질을 하는 미국의 총기 휴대를 우린 어떻게 보아야 할까. 나는 미국사회를 구경도 못해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 한국인이 범인이 되어 뉴스의 중앙에 있다 보니 자위권을 위해 개인이 총기를 소유하고 정당방위란 상황으로 총질을 하는 미국의 낯선 문화가 상관도 없을 듯한 문제같지만 새삼 무섭고 한탄스럽다. 아무리 삭막해지는 세상이라 해도 선악의 구분은 분명해야 하고 악이 선을 지배해서는 안되는 데 요즘엔 착하고 감동적인 일보다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범죄와 도덕이 더 부각되고 더 큰 힘을 가진 듯 하다. 점점 나에게도 보이지 않게 마음속에 이 세상 쓰레기같은 악을 처치해 줄 황야의 무법자나 레옹이 나타나 깨끗이 청소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분노처럼 자리잡고 있으니 내 안에도 커다란 코끼리가 사는 건 아닌 지 모르겠다. 어이없게 죽어 간 희생자를 위한 추모의 뜻으로 애도의 장송곡을 들어야 할 지금, 총소리 나는 서부영화 주제곡을 듣는 나의 심리상태도 황당하지만 이 사건이 마음을 울리는 경종이 되어 다신 이런 끔직한 일이 없었으면 한다. 이러한 사건을 보면서 일부이지만 제발 우리의 건강한 청소년들이 좋은 일보단 나쁜 일을 서슴없이 받아 들이고 악을 영웅처럼 거침없이 행하는 끔직한 판단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모든 청소년들의 마음 안에 올바른 세상을 바꾸는 정의롭고 착한 코끼리가 살았으면 한다. 2007.4.18 일 먼 숲 Ennio Morricone - 방랑의 휘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