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들녘에서 / 강 경 호
봄 들녘에서
강경호
죽음으로 일생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서둘러 유품을 태우고 흔적을 지운다 해도
들녘엔 푸른 핏줄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거기 강물 끝 어딘가 무엇이 된 질긴 목숨이
손짓발짓으로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한때 네가 살던 마을에도
나지막한 산언덕 오래된 봉분은 있다.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 무심해진다 해도
생전의 착한 것, 죄가 되는 것
어딘가를 떠도는 그리움으로 남아
아직도 너는 내게 불씨로 글썽이는데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무엇이 되어 다시 살아 왔듯이
무엇이 되어 다시 살아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뜨거운 마음 차마 가슴 저며
숲과 강마다 살아 타오르는 것을 보라.
먼 옛날 무엇이었던 네가
저렇듯 수백 번 옷을 갈아입고
봄 들녘 또 누군가를 눈부시게 부르고 있다.
-시집 ‘함부로 성호를 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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