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슬픈 음악은 없다 / 현악4중주 F장조(American)
드보르작의 현악4중주 F장조(American) 2악장 "Lento" 를 들으며
나는 삼십년을 넘게 드볼작의 현악 사중주 "아메리카"를 듣고 있지만 아직도 이 곡을 들으면 혼을 뺏긴 듯 혼미해지고 알 수 없는 비감한 감정이 넘실거려 슬픔의 깊은 골을 헤멘다. 세상엔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이 참으로 많지만 내겐 드볼작의 아메리카가 가장 슬픈 음악이다. 열아홉의 나이엔 King Crimson의 "EPITAPH" 나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도 한 때 쓸쓸한 마음을 달래 주었다. 무디블르스의 "Nights in White Satin" 이나 유럽에선 음악을 듣고 자살을 했다는 "Gloomy Sunday"도 잠시 슬프고 우울해질 뿐 드볼작의 음악만큼 감동을 주지 못한다. 가끔 슈벨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나 비탈리의 "샤콘느"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는 드볼작의 현악사중주를 들으며 때론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얻어 마음을 맑게 정화거나 아픈 마음을 치유 하곤 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슬픔이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통상적인 슬픔의 감정이 아닌 마음속에 내재된 본질적인 슬픔은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이 곡을 접한 건 아주 오래 전 기독교 방송의 심야 프로인 "한 밤의 클래식"인가 하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흘러 나오던 씨그널 뮤직에서 시작되었음을 나는 자주 말해 왔다. 적막한 시골의 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잠 못 들고 이 음악의 2악장 렌토를 듣노라면 창자를 끊는다는 표현처럼 애절한 현악기의 울림이, 예민했던 나이의 감정을 복받치게 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주고받는 아름다운 비탄의 선율과 가슴을 치는 첼로의 둔탁하고 무거운 저음이 가슴 밑바닥까지 고여 있는 슬픔을 퍼 올려 혼자 울게 하기도 했다. 또한 이 곡을 들으면 젊은 방랑의 길에서 흔들리는 애수와 향수가 노을처럼 젖어 들어 뜬금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이 곡은 내 감정의 바다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드볼작이 흑인 영가에서 악상을 떠올렸다지만 아메리카의 1.2,3,4악장은 마치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하듯 각 악장의 흐름과 멜로디가 유영의 강물처럼 흐른다.
이 모든 게 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나는 지금도 저 곡을 하루 종일이라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멜로디에 젖어 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이 그냥 이란 말로 반복되는 현악기의 애잔한 슬픔에 마음을 맡기고 만다. 어느 누가 "나도 저 곡을 제일 좋아 합니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마시지 못하는 술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은 심정이다. 상심의 그늘이 아닌 아름다움의 뒷면에 어리는 그늘처럼 현악기의 화음과 멜로디의 색이 푸르고 명료하다. 여기 올려진 처음의 곡은 말러가 관현악으로 편곡해선지 그 울림이 메아리처럼 깊고 현악기군의 선율이 다소 화려하고 유려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현의 멜로디가 실핏줄처럼 드러나는 <줄리아드 콰르텟>의 연주를 더 좋아한다. 이름을 잊었지만 오래전 유럽 어느 현악사중주단의 공연에서 아메리카를 들은 적이 있다. 백발의 노장 연주자 네명이 악보도 보지 않고 연주하던 황홀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순간은 뜨거운 심장소릴 듣는 듯 네 사람의 화음은 실로 천상의 하모니였다. 황량하다는 언어가 오히려 아름다운 여백을 그리는 십일월이다. 한동안 이 음악이 허허한 바람소리를 낼 것이다.
2006.11.23일. 먼 숲
Dvorak / String Quartet "America" Janacek String Quartet (LP)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2악장 Lento
3악장 Molto vivace
4악장 Vivace ma non tropp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