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밤에 쓴 인생론

먼 숲 2007. 1. 26. 14:14

 

 

 

 

 

 

벽장 속에서 꺼낸 "밤에 쓴 인생론"

 

 


다시 한해가 저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때쯤엔 느긋하게 뒤돌아보기보단 조급하게 남은 세월을 점검해보는 보이지 않는 쓸쓸한 마음구석이 생긴다. 그런 허전한 마음에 가을이 다 지날 무렵 낙엽냄새를 그리워하듯 묵은 것들에 대한 향수로 뜬금없이 보이지 않게 쳐 박아 둔 옛것들을 뒤지게 한다. 가을을 지나 찾아 온 그리움이랄까. 한동안 잊은 척 했던 추억의 갈피를 찾아 휴일 오후 먼지 묻은 괘짝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 벽장 속에 들어가 흙 냄새나는 구석에서 보물찾기하듯 숨겨진 것들을 찾아 작은 공간을 뒤지던 기억이 난다. 신문지로 초배만 한 벽장 속은 매캐한 흙 냄새가 나지만 그 어느 은신처보다도 아늑하고 편했다. 어머니 자궁 속 같다고 표현하면 과장이겠지만 그 때는 아무도 몰래 혼자 격리된 호젓함과 때론 잘못을 저지르고 무서워 지레 겁먹고 숨는 도피처이기도 했다. 난 그 벽장 속에서 간혹 보지 못했던 신기한 것이나 소중한 것을 보곤 했다.

 

큰 형이 보다가 쌓아 둔 어렵고 두꺼운 명작 책도 있었고 때론 미국 아가씨와 펜팔을 하다 그 아가씨가 보내준 꼬부랑 글씨의 편지나 금박이가 있던 아주 신기한 크리스마스 카드도 책갈피에서 나왔으며, 벽장문에 붙었던 커다란 모란꽃을 보고 그린 수채화가 있는 스케치북도 있었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가 썼던 공책 같은 것도 있었다. 생전 시 마을이장을 볼 때 쓰셨던 것이라고 했는데 좀먹은 누우런 종이에 아버지의 글씨는 옛스럽고 서툰 글씨체였던 것 같았다. 몇 번의 이사로 사라져버린 유품이랄 수 있는 그것이 새삼 그리워진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다락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나치는 얘기였지만 다락방엔 추억과 미래가 있고 지하실은 현재가 남아 있다고 했던 것 같다. 다락방은 어릴 적부터 올라가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동화책을 보거나 하늘을 보고 또 밤이면 별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곳이기도 하기에 미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하실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데 필요한 모든 자질구레한 일상의 물건과 실 생활용품이 있기에 현재가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가옥구조상 높다란 지붕 위의 다락방은 드물지만 안방이나 사랑방의 부엌공간의 천장을 이용한 벽장이 서양의 다락방에 견줄만한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파트 문화에 적응한 우리야 이런 옛 추억을 떠올릴 손 때 묻은 것들을 보관하기엔 역부족이고 점점 보관해야 할 필요성마저 희미해진다. 애들이 자라면 그 물건을 다른 동생들에게 나눠주거나 아니면 쓰레기 분류 작업 때 불필요한 허접쓰레기가 되어 미련없이 내동댕이쳐진다. 이담에 나를 추억할 증거물로 소중하게 보관치 않는다면 한 해가 멀다않게 급변하는 요즘의 세상사에서 지난 물건은 공간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성장과 동시에 부장품처럼 여겨지던 추억들이 요즘은 VTR이나 CD에 응축되어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편리한 방법으로 변하고 있다. 어쩌면 아파트는 과거는 없는 점점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수시로 탈바꿈하는 주거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현실에서 요즘 옛것을 찾아 본 다는 것은 아주 가까운 우리 세대의 추억일 것이다. 옛 물건들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민속박물관에나 전시 된 형편이니 뒤져봐야 값나가는 골동품도 없고 겨우 밀감상자나 묵은 서랍에 유배시킨 십여 년 전의 일기나 편지, 앨범, 그리고 색 바랜 책일 뿐이다. 일기라기엔 불규칙적인 낙서장과 옛 편지들을 뒤적거리면서 떠오르는 많은 기억들과 그리운 얼굴들이 베란다 유리창에 어리는 뿌연 성에처럼 정겹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그리움에 손톱을 세워 생각나는 이름들을 유리창에 써 보니 풋풋한 모습들이 흑백사진처럼 떠오른다. 그것은 잊혀지지 않고 다만 먼 거리에 정지되어 있는 사진 같다.

 

묵은 상자 하나를 열어보니 차곡차곡 쌓여있는 책 중에 작은 문고판들이 가득하다. 거기선 퀴퀴하게 마른 곰팡이 냄새도 나고 구수한 낙엽 태우는 냄새도 나고 어렴풋이 남은 나프탈렌 냄새도 쏟아져 나온다. 누우런 갱지로 된 책종이가 더 빛이 바래서 무겁고 두꺼운 무게를 느낀다. 참으로 반가운 책들이다. 한 때 그 작은 책은 어딜 가든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친한 친구고 말벗이었다. 특히 여행 중에는 서너 권씩 필수품처럼 챙겨 넣던 소중한 책들이었다. 소매와 주머니 단이 나달나달하게 닳아버린 야전잠바의 커다란 주머니에 맞춤처럼 자리잡던 삼중당 문고판을 보니 추억을 돌아보는 시침 바늘이 스무살 시절에서 멈추어 선다.

 

 

 

 

 

 

 

삼중당 문고판인 이 작은 책은 가로 10센티와 세로 15센티의 작은 크기로 누우렇게 칙칙한 낙엽 빛으로 바랜 채 묵은 책 냄새가 두껍게 묻어나고 있었다. 작은 활자가 더 작게 보여 지금은 안경이나 써야 볼 것 같은 촘촘한 활자가 세로줄 쓰기로 깨알처럼 박혀있다. 초판 발행일이 1975년으로 되어있으니 그 시대를 산 젊은이들이라면 "삼중당 문고" 시리즈를 꽤 많이 가지고 있거나 낯익은 책일 것이다. 문학, 과학, 전기, 수필, 사상 전반에 걸쳐 번호를 부여해 발행한 이 책의 정가는 200원으로 되어 있다. 

 

그 당시 200원은 얼마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붕어빵 한 개 값이 그 때는 허기진 지적 욕망을 채워줄 보석 같은 중요한 값어치가 되었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평소 이름만 듣던 고전들이 여러 종류의 명화나 그림으로 된 표지를 하고 손바닥만한 크기로 발행되어 번호순으로 나열 된 책방에서 싼값으로 책을 고를 때는 마음도 부자 같지만 다 읽지도 못한 그 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꽤나 유식한 지식인 같은 철부지생각을 하게 했다. 그렇게 책방을 들락거리며 한두 권 사모아서 책꽂이에 꽂혀진 문고판은 한 밤 머리맡에 두거나 불현듯 떠나는 여행길의 호주머니에 정겨운 동반자가 되었었다. 

 

통기타와 청바지가 그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던 70년대 말경 나는 다 낡은 구제품 야전잠바에 칙칙한 먹물빛으로 염색하여 한여름을 뺀 거의 사계절을 시꺼먼 야전잠바를 걸치고 다녔다. 머리 긴 히피도 아니고 또한 고무신 신은 반사상가나 반항적인 이미지도 아닌 주제에 소매가 다 헐어 가는 야전잠바에 청바지 하나 걸치고 농구화만 신은 고집으로 젊음의 멋을 즐겼다. 그 큰 야전잠바의 주머니에 쏙 들어갔던 삼중당 문고판은, 구름처럼 떠도는 그리움으로 허전하던 청춘의 빈 마음의 한 쪽 귀퉁이에 작은 무게를 실어주며 홀로 여행하는 외로움 속에서 간간이 들여다보는 글벗이 되었었다.

 

 

 

 

 

 

 

 

내가 가진 책들은 주로 시집과 수필집이 많았는데 어느 시집은 중간 중간이 접혀있거나 검정 볼펜으로 줄이 쳐 있었고 간혹 낙서도 있었다. 영롱한 시어로 서정이 무르익은 옛 시와 수필은 마음의 양식이 되어 기억하고픈 구절마다 덧줄이 쳐진 채 보리밭처럼 푸른 이랑을 이루고 있었다. 그 젊은 날은 마냥 넓은 초원이 되어 방랑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하늘을 나는 파랑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방황의 순간 순간에서 작은 책은 인생의 이정표처럼 삶의 길목에서 외로운 손을 잡아 주는 길잡이였으리라. 
   

뒤척거리는 새벽잠처럼 추억을 뒤척이다 "밤에 쓴 인생론" 이란 박목월 시인의 수필집에서 추억의 향기를 찾아냈다. 표지그림은 불빛이 다정한 호롱불 아래 빈 편지지와 화살촉 같은 펜과 담배 파이프가 그려진 정물화인데 그 램프의 불빛이 기억의 심지를 돋구고 지난 시간의 책상 위에 마음을 머물게 한다. 첫 장을 넘기니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제 3번 A장조 란 곡명이 적힌 메모가 있었다. 아마도 "한밤의 클래식"이란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그 곡을 기억하고자 적어 놓은 메모 같다. 

 

그래. 그때는 겨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선율로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키던 시절이었지.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가끔 한 밤중 폭설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소나무가 가지를 찢기우는 고통의 소리를 듣거나 시퍼런 칼날같은 추위에 지진처럼 쩍쩍 갈라지는 얼음판의 울음소리도 들었었지. 눈 오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릴 듯 적요로운 시골밤은 먼 부엉이 소리로 깊어가고 들창 넘어 뒷마당엔 처연하게 푸른달빛에 젖은 뒷산의 나무그림자가 앙상하게 엉켜있던 그 고독한 시절이 지금 눈밭에 선연한 발자국처럼 마음에 길을 내고 있다. 지난 기억의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아름다운 불꽃으로 타오르며 내 청춘의 자화상은 위풍으로 썰렁한 구석방의 책상에 앉아 언 마음을 비비며 이 작은 책을 읽고 있었다.

 

 

 

 

                                                                              <사진 네이버 포토에서>

 

 

빛 바랜 노란 형광 펜으로 밑줄처진 박목월 시인의 "밤에 쓴 인생론"이란 책엔 이렇게 나에게 무언의 고독한 대화를 해 주었다. 

"고독이란 단순하게 외롭거나, 외로운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하게 고독한 자만이 벗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고독 안에서 발견한 넓은 세계>속에서 온갖 벗 가운데 쌓여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과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음도, 달빛에 젖은 나무 잎사귀와 속삭일 수 있음도, 혹은 조용한 밤에 자기가 자기와 얘기 할 수 있음도, 고독이 우리의 입을 열게 하고 우리의 귀를 듣게 하고, 우리의 눈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진실로 생명이 지닌 모든 것의 본연의 모습은 고독한 것이라고 위에서 말했다. 그것은 그들 나름의 고독한 영역의 圓周 안에서 다른 세계에 접하게 되고 그것과 교섭을 가지는 것이다." 

  

"고독한 圓周"라는 제목의 이 글의 뜻을 이해하고 밑줄을 그은 것인지 모르지만 그 때는 孤獨이란 말을 무슨 겉멋처럼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의미도 모른 채 고독해지고 싶어 요즘 젊은이들이 머리에 노랑물 들이듯 고독이란 물감을 마음에 풀어놓고 살았다. 이십년이 지나 다시 이 글을 읽어보니 조금은 고독이란 의미를 알 듯도 하다. 그러나 그 求道적인 수련과 명상속에서 얻어지는 고독의 영역을 드나들기엔 먼 세속의 변두리에 산다.

  

그리고 아직 "孤獨"이란 첫 글자를 써 놓고, 그 명제 앞에서 서성거리기엔 가야 할 인생의 여정이 멀고 한 걸음도 물러 설 수 없이 치열한 삶의 대열에서 낙오자가 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시점에서 인생을 논하기엔 스스로 가늠할 수 없는 삶의 무게로 공허하기만 하다. 우린 자신이 짊어진 굴레를 벗지 못하는 외로움과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고독이라는 원주를 만들고 그 둘레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사는 것은 홀연히 새벽길을 나섰을 때 만나는 어슴프레한 未明의 설레임으로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노을의 아쉬움 같다. 그것은 시작은 있어도 생각만 하다 마침표도 찍지 못하는 밤에 쓴 인생론처럼, 삶의 마무리는 미완으로 끝나는 공허함으로 느껴진다. 
 

지금 다시 내가 폭설로 단절된 어느 산마을에 갇혀 램프에 불을 밝히고 뾰족한 펜으로 "밤에 쓴 인생론"이란 글을 쓴다면 무엇을 쓰고 있을까. 먹물 빛 야전잠바를 입은 청년이 되어 겨울산처럼 엎드려 어둔 기억의 창고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을까. 아니면 지나간 세월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었다며 마침표를 찍고 있을까. 먼 훗날 내 인생의 언덕에 햐얀 눈이 쌓인 겨울날 내 기억의 벽장속에서 꺼낸 인생론은 어떤 모습일까.

 

 

 


2000년. 12월 17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