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과 커피! 커피와 가을!
참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그 향기이 풍부해지는 계절입니다 마치 커피속에 녹아 들어가는 프리마의 선전처럼 가을에 마시는 커피는 새삼 그 용해도와 향이
어느때보다도 진하고 그윽해지는 느낌입니다 출근 후 투명한 바깥의 햇살때문인지 머그컵의 피어오르는 커피향이 느껴저 코를 가까이 하고 후각을 즐겼습니다
손잡이에 전해오는 온기도 따스해졌고 암갈색 또한 무겁지 않고 편안해졌습니다 그 순간 참 괜찮은 사람과 통유리창 쪽으로 난 의자에 앉아 그저 말없이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침묵의 시간처럼 가을나무를 타고 길어진 해그림자나 지켜 보면서 마냥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처럼 아내와 넉넉한 데이트도 생각해 봅니다만 아직 여유로움이 없어선지 편안히 앉아 있지 못하는 낯설음과
애들의 기다림까지 여러 자질구레하고 부수적인 긴장감이 동반하고 나서서
도통 그런 한가함을 갖게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부딪친 현실감이 모처럼의 감상을 지워버리지요
잠시나마 늘상 견디고 사는 현실에서 아무 생각없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가 봅니다 강박관념과 굴레가 편지를 쓰는 시간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존재하게 합니다 글쓰기의 상상은 비현실적인 요소를 가능케 하니까요

오늘은 은행잎 시나브로 떨어지는 카페에 앉아 카프치노 같은 순한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그 앞엔 누구라도 상관 없습니다 모두 가을 손님이니 아무나 마주 앉아도 괜찮겠지요
음악을 신청해 볼까요? 저윽하고 울림있는 레너드 코헨의 음유시나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도 좋을것 같군요 아니면 포르투칼 가수인 아말리아 로드리겟차의 절절한 파드는 어떨까요? 찻집을 오르는 계단엔 나란히 노오란 국화 화분이 놓여 있으면 좋겠군요
자유로를 따라가다 한강 하구쯤의 옆에 "풍경"이란 찻집이 있었지요 지금처럼 벼가 노오랗게 익어가는 가을엔 논가운데 찻집이 있어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초가지붕이나 잡동사니 골동품도 정겹지만 무엇보다 김포 벌판과 서산 너머로 지는 붉은 노을과 들녘의 가을 냄새가 가슴을 펴게 했지요
거기선 멈춰 있는 재봉틀처럼 추억은 정물화로 놓여져 있지만 그 추억이
남아있는 내 존재의 그림자란 생각에 하나하나 필름을 되돌려 보게 합니다. 비록 이젠 차 한 잔 같이 마실 벗도 없는 외곽의 나그네로 살지만 그 홀가분함에 오히려 길들여진 세월이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은빛 억새꽃이 나부끼던 고향의 산비탈을 그리워 합니다
긴 오솔길을 돌면 언제나 마주치는 산국의 향기와 구름은 내가 새가 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였지요 저녁노을이 참 아름다운 언덕이였지요

그 푸른 소년이 지금은 어디 있을까요? 이젠 커피의 쓴맛에 중독된 것처럼 삶의 근심에 중독되어 갑니다. 사는 게 별거 아닌데 나도 나를 잃어 버리고 오직 나와 살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에 매달려 삽니다. 해지는 오솔길에 서 있던 소년을 생각하니 지금의 내가 낯설어집니다. 가끔 그렇게 사는 게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또 다시 수신인 없는 가을편지를 썼군요.
언제나 시작도 근원도 모르게 알 수 없는 그리움은 가슴에 안개처럼 피어나고 이 가을 나는 사랑이란 말에 또 다시 의문부호를 답니다만 아직도 그리움보다 모를 게 사랑인 것 같아 그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남루해 보이고 유치한 감상으로 들리더라도
가을엔 가슴으로 전해오는 따스한 사랑이란 말을 넣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계절이고 싶습니다
한 때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었던 연인들의 이별은
지금처럼 많은 세월이 지난 가을에 서서 보면
서로의 운명일 수 있겠지요
일어 설 시간이 되는가 봅니다. 빈 찻잔에 고여드는 가을빛을 봅니다. 한동안 남겨져 있던 생각을 주워 담고 담쟁이 덩굴이 물들어 가는 돌담길을 돌아 나오며
그리움을 동행하는 가을이름을 가만 불러봅니다
남 몰래 물들어 오는 단풍잎에서도 커피향이 느껴집니다. 그 단풍잎에 이 편지를 써서 날려 보냅니다.
2002.9.27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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