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산그림자

여름을 깨우다

먼 숲 2007. 1. 26. 11:27

 

 

 

 

 

 


 

                       

  

           

여름을 깨우다

             

     

신록이 깊어져 골이 보이지 않습니다

새벽 물안개로 습해진 아침

난지도 앞 한강 둔치 활터에서

초로의 사내가 활 시위를 당깁니다

초록으로 팽팽한 오월을 명중한 화살은

강섶의  버들숲을 지나 강물에 둥근 파문을 그립니다

푸드득 산새 한 쌍 날아 오르며 여름을 깨우자
물빛 여름이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싱그런 유월이

깊은 산그림자로 좁아진 강폭을 건너

느리게 건너오고

 여름은 바다로 향해

빠른 물살로 하류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얼마전 밭머리에 드니 감자꽃이 피기 시작하던군요

문득 먼 강원도의 산골마을이 그리워집니다

대관령이나 아우라지 근처

긴 산비탈의 감자밭 풍경이 보고싶습니다

아침 안개에서 벗어나는 하얀 감자밭의

꽃이랑 이랑 사이에선

새벽을 깨우는 먼 뻐꾸기 소리나 산새 소리도 들립니다

구부러진 산자락을 돌고도는

강의 상류에 앉아 있으면

새들이 날아와 청록의 여름을 깨우며

강물에 세수를 하거나 물을 마시고

보랏빛 칡꽃이 피는

여름 숲으로 날아가곤 했습니다

 

 

여름이 오면서 아파트 울타리나 도심의 로터리 공원에

새빨간 줄장미가 꽃덩굴을 이루며 담을 넘고 있습니다

화단마다 장미가 탐스런 꽃사발로 피어나

유월의 향기는 그윽합니다

넝쿨장미가 아치를 이루는 유월에 첫딸을 보았는데

어느새 그애가 장미처럼 예쁜 소녀가 되었습니다

그 애와 귀여운 동생이 자라는 동안

생각해보니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 사이 몇년간 글을 쓴다 하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겐

작은 사랑의 밀어조차 전해주는데 소홀했고 인색했습니다

이미 장미빛 날들이 다 시들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 문득 장미가 핀 꽃밭을 지나가면서

내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준 여인에게 새삼 미안했습니다

유월이 되면

처음 만난 여름처럼 마음으로나마

노란 장미의 프로포즈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장미성은 향기롭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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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29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