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수유꽃>
대기에 황사의 입자들이 먼지처럼 남아 시야가 흐리긴 해도 햇살이 따습고 환합니다. 살결로 전해오는 봄기운의 신선함이 차갑고도 촉촉해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싶지만 아직 어깨가 시려운 것 같군요. 한차례 꽃샘추위가 지나서인지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산수유의 꽃망울을 만났습니다. 공원 한 켠에서 노오랗게 산수유 꽃망울이 부풀어 있었고 서울로 들어서니 어느 길가엔 이미 노오란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늘 지나가는 길이건만 지나치고 있었나 봅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령사가 잎보다 먼저 피는 저 산수유꽃이 아닐까요?
헌데 저는 산수유보단 생강나무꽃에 정이 갑니다. 생강나무꽃과 산수유는 쌍둥이처럼 꽃이 비슷해 쉽게 구별이 안되지요. 자라면서 잎과 열매가 확연하게 다르지만 꽃으로 봐선 아리송한 꽃입니다. 아마 산수유가 일반적으로 알려지긴 신도시들이 건설되면서 관상수로 공원에 많이 심어져 쉽게 볼 수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삶이 윤택해지면서 여행과 레져 붐이 일고 봄이면 으례히 소개되는 구례의 산동마을이 알려져 산수유꽃 이름이 노오란 꽃구름처럼 번진 것 같았습니다.
위에 있는 꽃이 산수유꽃이고 아래 사진의 꽃이 생강나무꽃입니다. 의외로 중부 이북의 야산에서 이른 봄 쉽게 마주치는 꽃의 거의가 생강나무꽃인데 이 나무를 산수유라 부르는 이유는 먼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생강나무라는 이름보다 산수유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기 때문일겁니다. '이른봄의 노란 꽃'은 바로 산수유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는 탓인 것일테지요. 또 두 나무를 혼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식물 모두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고 유사한 꽃모양과 그 색깔이 노랗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는 사돈의 팔촌도 되지 않는 아주 다른 나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산에 저절로 자라는 토종식물은 생강나무이고 마을 근처에 심어 가꾸는 외국나무는 산수유나무일 겁니다. 그래선지 대체로 산수유는 어느 지역에 집단적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큰 산수유나무를 어느 산에서 찾았다며 이 나무가 우리 나라 자생식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나 봅니다.


<생강나무꽃>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는 과(科)부터가 다릅니다. 산수유나무는 말채나무, 산딸나무, 층층나무와 같은 속(屬)에 속하는 층층나무과 식물이고, 반면에 생강나무는 동백무, 뇌성목, 털조장나무 등과 함께 생강나무속을 이루는 녹나무과 식물인 것입니다.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강나무는 나무에서 생강냄새 같은 독특한 나무향이 나며 표피가 매끄럽고 잎눈이 날카로운 유선형으로 나 있으며 나중 잎모양도 좀 넓게 세 손가락 모양의 둥근 삼각형이고 산수유는 표피가 거칠고 잎모양도 둥근 유선형의 보통 나무잎 모양이면서 가을이면 붉은 열매가 열립니다.
나는 옛날 우리 마을에 있는 생강나무 자리를 알지요. 우리 집 뒤산과 건너편의 안산에 있었는데 꼭 북쪽 응달진 곳에 있었습니다. 잔설속에 개나리보다 먼저 피는 꽃이라 이른 봄이면 욕심에 생강나무 꽃을 꺾어와 방에서 몰래 봄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생강나무를 여기선 동백나무라 했습니다. 아마 겨울이 지나고 제일 먼저 피어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나중 서정주의 시에서 붉은 동백꽃을 알기 전까진 생강나무꽃이 산수유도 아니고 동백꽃으로 알았으니 생강나무에 대한 혼란은 늦게서야 풀린 셈입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도 붉은 꽃이 숭어리 채 떨어지는 남녘의 상록수가 아닌 바로 생강나무라는 것도 늦게서야 알았지요. 저처럼 중부 이북에 사는 사람은 거개가 생강나무를 동백꽃이라 불렀던 모양입니다. 여하튼 이젠 확실하게 세가지 나무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봄이 오기 전 내 마음속에 먼저 피는 꽃은 생강나무꽃인 셈이지요. 지리산 자락의 산수유꽃 마을은 가 보지 못해 그 장관을 꽃구름처럼 상상만 하지만 잔설이 아직 남은 봄 산을 오르면 반가운 미소로 반겨주던 꽃은 분명 생강나무꽃이였습니다.
시절이 봄이건만, 세상사가 혼란스런 정치바람으로 분분한 요즘입니다. 누구하나 잘 한 사람도 없으면서 서로 물고 뜯으며 잘못을 떠 넘기며 파국으로 몰고 있지요. 산수유와 생강나무의 구별이 애매한 것처럼 지금 정국의 앞날이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비록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알아 볼 수 없게 비슷한 모습이지만 그들은 어김없이 그 본분을 다 해 불협화음 없이 봄마다 일찌기 희망의 꽃소식을 전합니다. 야당이면 어떻고 여당이면 어떻습니까. 온 세계가 앞이 보이지 않는 황사바람 속인데 당파와 관계없이, 모두가 제 자리에서 시린 계절을 이기고 꽃이 되고 새싹이 되어 꿈이 움솟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꽃이 피는 봄, 세상사도 저리 환하게 희망의 꽃망울을 터뜨렸으면 좋겠습니다.
2004.3.13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