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이라 할 수 없는
근래 보기 드문 많은 적설량의 눈이 왔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설국에 있는 것 같았지요.
눈부신 설화와 드넓은 설원같은 풍경을 지나치면서
영화 닥터 지바고를 생각했습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묻어두고 있던 그 영화가
차창을 스치면서 서정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질척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
영화속의 주인공으로 빠져 있고 싶었습니다.
음울하고 쓸쓸한 시베리아 평원의 폭설에 갇혀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다보며 유리창에 낀 성에를 긁어 편지를 씁니다.
수선화가 일렁이던 별장과
끝없는 자작나무 숲 사이로
스산한 낙엽이 휩쓸려 가는 소리가
시베리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열차의 경적소리처럼 멀어져 갑니다.
줄리 크리스티의 얼음처럼 차갑고 우아하게 빛나는 지성미와
오마샤리프의 고뇌에 찬 눈빛이 인상적적으로 다가오던 영화는
숭고한 사랑의 메모들이 끝없는 설원에 발자국으로 남고
애절한 음색의 러시아 민속악기 발랄라이카(Balalaika)가 내는
라라의 테마는 눈보라처럼 흩어집니다.
2004.3.5일. 먼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