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산그림자

해빙...그 언어의 행간에서

먼 숲 2007. 1. 26. 10:33

 

 

 

 


 

서쪽을 향한 창문이 눈부신 빛으로 환합니다.

한 때는 통유리로 비쳐드는
빛살의 기우는 각도만으로도
하루가 기울어 가는 스러짐의 눈빛으로
오후의 마음이 황금빛 햇살로 물들었었지요.

이젠 하루를 쪼개어 부채살처럼 펴 보려 해도
처음과 끝이 마주볼 뿐
분할된 틈 새의 그림이 없습니다.
갑갑하다고 속으로 말하곤
아무런 투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웠던 것도
그 사이 더듬더듬 멀어지고
오랜만에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둔탁하고 자꾸 멈추고 맙니다.
내 안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는 어디서 길도 없는 눈밭을
혼자 외로운 길을 내고 있을까요?
그 발자욱이 노루발자욱처럼 또박또박
각인된 도장처럼 새겨져 보입니다.

그리워도 그립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아프지 않습니다.

 


2002.1.25일. 추억의 오솔길.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네시
                       좁은 거실에 웅크리고 있음이 답답합니다.
                       속이 메스껍고 더부룩해 트림조차 할 수 없는 무거움에

                       아내와 바람을 따라 나섭니다.

비껴가는 오후의 햇살은
시계방향의 아홉시쯤에 온 것 같았습니다.
공원 빈 운동장에 가득 퍼지는 결 고운 빛은
마른 땅의 축축한 기운을 드러내게 합니다.

 

이 찬바람의 파고듬은
신선한 회를 뜨는 칼날처럼 번득입니다.
그렇게 봄 빛은 양지녘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지금 들녘을 나선다면 푹푹 꺼져가는 서릿발을 볼 수 있겠지요.

내일모레가 이월의 첫 날입니다.
푸른날 이월의 해빙기는 저를 깨우는 새벽이였지요.


이르게 찾아 온 봄의 기별에 몸살을 앓느라
서릿발을 뚫고 어딘가로 더듬이처럼 내 안의 싹을 내밀고
언 발로 맨 땅을 디디며 흙냄새를 맡았습니다.

삼월이 오기전에
난 신발 가득 해빙으로 질척이는 생명의 흙을 묻혀서
시뻘건 황토흙이 짓이겨진 무거운 신발을 끌고
어디론가 헤메며 녹녹해진 마음으로
봄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월이 내일입니다.
이젠 그 시작을 위해 토시를 준비하고
옥죄던 넥타이를 영원히 풀어 버립니다.
가끔 그 허울이 흰 와이셔츠카라처럼 산뜻했음을 기억합니다.

냉이를 캐는 아낙이 남녘의 오후를 지나겠지요.
바라보고 스치는 모든 생각과
내 안과 주위로 일어나는 비누거품같은 생각들이
어느것 하나 은유할 수 없이 순간순간의 필름으로 사라진다는 것에
삶은 얼마나 사람을 건조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직유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마져
한걸음 한걸음 옮길적마다 잊혀져 버립니다.
건방지게도 난 식상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대단한 의미부여를 하려 했나 봅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맥없이 글쓰기에서 멀어지는 지금의 간격이
견딜수 없다고 소리없는 몸부림을 하고 있나 봅니다.
그것은 지금 내 중심이 뭉개져 비어있는 공황상태임을
암시함을 저는 압니다.

 

이럴 때가 생의 주기처럼
평탄치 않게 숨찬 고개로 닥쳐옴이 예전에도 있었건만
이젠 게을러지고 약해진 나이라는 줄타기에서
그 흔들림을 민감하게 느끼나 봅니다.
이렇게 사는 모습이 가장 적나라한 것일진대
그동안 많이 위장하고 태연한 척 하지 않았나 생각되는군요.

 

지금 전 제가 가야 할 괘도를 진입하지 못하고
자꾸 뒷전에서 밍기적이고 있는가 봅니다.
제대로 눈길 한번 밟지 못하고 겨울은 가고
내 마음의 은유는 얼어 있지만
봄이 오는 소리는 한겨울에도 잠자지 않고
맥박처럼 흐르고 있었겠지요.

 

해빙.

이 언어의 행간으로 마음의 갈피를 녹여봅니다.

 


2002.1.28일. 추억의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