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가 있는 것은 여리다
황사가 채 가시지 않은 봄 길을 나섰다. 점심시간 후 봄볕이 화창해 무작정 사무실을 빠져 나와 가까운 안양천 둑방길에 서니 바람결에 먼지가 묻어나지만 따사롭다. 안양천을 따른 갓길의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에도 아랑곳없이 개나리들이 노오란 꽃망울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 아래엔 작년의 마른 잎새를 버리고 소롯 돋아난 원추리싹이 파릇하다. 작고 보일 듯 말 듯한 생명들이 소리없이 고갤 내미는 어여쁨이 신비롭기만 하다. 둑방을 내려와 넓은 하천가를 따라 걸으니 한 겨울에서 해동된 물비린내가 실려온다. 멀리서 보면 느린 흐름으로 정지된 물살같던 풍경이였는데 가까이 가니 제법 빠른 유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가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속에서 나 아닌 저들은 어떤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까 하는 막연한 질문의 답같이 평지처럼 수평을 이루고 있는 강이나 바다도 잠시도 쉬지않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봄의 새싹들처럼 이 지구상의 모든 개체들은 그렇게 약속처럼 흐르고 돋아나며 끝없는 반복으로 살아간다는 단순한 생각이 뜬금없이 새롭기만 하다.
완급 조절이 구불구불하던 옛날의 개울들이 반듯하게 정비가 된 넓은 하천의 퇴적된 삼각주와 풀빛어린 둔치엔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떼가 오밀조밀 무리지어 한가로이 봄볕을 즐기며 느릿한 자맥질로 봄을 낚고 있다. 골짜기를 이룬 하천 사이로 한쪽엔 반듯한 공장 건물들이 새로이 테크노 벨리라는 이름으로 산업지구를 이루고 반대편엔 아파트 숲이 끝없이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에 걸맞게 안양천은 깨끗하게 정비되고 둔치엔 자전거 도로나 드문드문 체육시설도 있고 쉬어가는 그늘막도 만들어 산보를 나와 걷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윤택스럽고 평화스러 보인다. 내게 이곳은 낯선 곳이지만 오래전 이 지역은 지금과는 판이한 모습이였으리라. 시인 기형도의 팔십년대 詩에 자주 등장하던 풍경처럼 높은 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나 하천의 안개와 버무려져 회색빛 농무로 자욱하거나 둑방 건너 아파트 촌은 넓은 논밭이 있어 서울로 팔려 나가는 푸성귀를 사시사철 키워내었을 것이다. 그나마 타향으로 밀리고 밀려 온 서민들이 무허가로 터를 잡고 하루를 연명하며 살던 곳들이 개발이란 이름으로 정비되고 옛모습을 잃어 버린 채 신도시로 탈바꿈하며 홍수에 밀려 사라지고 생성되는 모랫벌처럼 옛 모양을 지우고 있었을 것이다.
내 발자욱 소리에 놀랐는지 푸드득하며 비둘기떼가 날아 오른다. 정오를 지난 둑방 길가엔 구청에서 설치한 스피커를 따라 경쾌한 노래가 흘러 나오고 간간이 넓은 챙모자를 쓴 아낙들이 햇쑥을 캐고 있다. 잠시 하루의 순간을 일탈해서 나오니 봄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가벼운 보폭으로 걸으며 큰 다리 두개를 지났다. 시멘 블럭으로 쌓지 않은 둑엔 파릇한 풀빛으로 변하며 이름모를 풀들이 솟아 오른다. 봄의 전령사라 할 수 있는 꽃다지,양지꽃이나 별꽃, 개불알꽃 같은 눈꼽만한 풀꽃들도 보인다. 그렇게 미미하게 작은 풀꽃들은 생존경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선 생명력이 무성한 큰 것 보다 먼저 피고 씨를 맺어야 살아 나갈 수 있기에 서둘러 얼굴을 내미는 것 같다. 그래선가 봄엔 스치는 눈길에 보이지 않는 코딱지만한 꽃들이 많다. 한참을 걷다보니 아직 마른 풀들이 엉겨 있는 사이 사이 이미 지난해의 씨앗을 다 날려 보낸 빈 꽃대궁들이 많다. 코스모스나 갈대, 박주가리 덩굴은 새털같은 씨를 다 떨구고 빈 껍질만 드러내 놓고 있다. 그런데 물가 시멘트 블럭 여기저기 키 크고 사나운 도꼬마리가 아직도 고슴도치 같은 모양의 씨앗을 주렁주렁 달고 잡목처럼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귀화식물로 번성하며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여직 억세게 서 있는 그 모습이 사나운 침략자 같았다.
한여름에도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약자를 타 넘고 기세좋게 세력을 넓히는 식물들은 따가운 가시철망을 두루거나 뾰족한 가시를 세우며 자신의 영역을 점령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외국서 들어 온 귀화식물들이 많다. 가시를 가진 것은 침략자처럼 독하고 사나운 것인지 아니면 여리고 약하기에 보호망처럼 가시를 가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도 가시가 많아 스스로 잘 찔리고 낯선 이의 접근을 피하는 데도 저 가시많은 귀화식물처럼 억세게 견뎌내지 못하고 내 안의 가시에 쓸려 아프다. 새삼 거칠고 메마른 황무지에서 무성하게 번성하는 식물의 적응력이 부럽다. 그러나 벌써 해를 넘겨 봄인데도 아직 독침을 세운 작년의 많은 씨앗을 더덕 더덕 달고 있는 마른 줄기의 도꼬마리가 안스럽기보단 흉칙해 보였다. 산보를 마치고 돌아와 이름도 괴상한 도꼬마리를 검색하니 성게처럼 가시많은 그 열매들이 오래전부터 민간요법에서 "창이" "창이자"라고 축농증이나 비염, 관절염, 알코올 중독이나 두통등 여러 질병에 좋은 효험이 있다고 한다. 독충처럼 성난 겉모습만 보고 혐오스러워 하던 도꼬마리 씨가 사람에겐 아주 이로운 약이 된다는 사실에 나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이로운 줄 알았으면 바람이 아닌 동물이나 사람 몸에 붙어 씨앗을 이동시키는 도꼬마리의 쉽지 않은 번식을 대신해 내 몸에 벌레처럼 씨앗을 붙여서 다른곳으로 옮겨 줄 것을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 같은 흉칙한 모습만 보고 미워했던 선입견을 바꿔 식물에 대한 애정을 보내고 싶다. 도꼬마리처럼 꽃과 식물, 나무들이 끈끈이나 가시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패막이지 남을 해하게 하지 않는다. 많은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여러가지 보호색을 가지고 견제하며 살지만 그들은 공존하는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역설적이겠지만 가시를 가진 많은 식물들을 위해 『가시를 가진 것은 여리다.』 라고 말해 주며 이번 여름에 꽃 피울 외진 곳의 도꼬마리를 보면 빙긋 연민의 미소라도 지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