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십이월로 들어서자 오후 다섯시가 되어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무렵이다. 가뜩이나 짧게 남은 날들도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데 어둠마져 다급하게 밀려오는 것 같아 겨울의 저녁길은 찬바람처럼 더욱 종종걸음 치게 한다. 어쩌다 일찍 퇴근하는 길도 이젠 어둠이다. 요즘따라 잦은 늦은 시각의 귀가길은 마치 파장길을 가는 것처럼 쓸쓸하거나 을씨년스러울 때가 많다. 열시만 지나도 북적대던 영등포역 지하도가 한산하고 버스정류장 주변의 많던 노점도 철수를 하거나 야식거리를 파는 포장마차로 변해있다. 썰렁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동동거리며 추위를 달래려고 서서 뜨거운 오뎅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마시거나 꼬치를 먹으며 늦은 시장기를 채우는 풍경이다. 술집이 늘어선 골목에선 얼큰하게 취한 취객들의 비틀거림이 몰려나오고 지하도엔 찬바람을 피할 요량으로 누추한 노숙자들이 역내를 어슬렁거리거나 구석진 냉바닥에 모여 앉아 절망의 담배연기를 내뿜거나 술에 취해 구겨진 삶의 술주정을 해대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도 파장의 시간이 지나면 삶의 변두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추운 현실의 뒷골목을 지나는 마음은 무겁고 우울하다. 희망없이 살기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둥바둥 사는 사람도 이미 절망마져 포기한 사람도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을 것이다.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지금 행복하다 하여도 언제 다시 힘들게 불행과 싸울지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다. 이런저런 궁상스런 생각을 외면하고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되돌아 가는 한 두시간 정도의 거리가 어쩌면 지금껏 살아 온 인생 여정의 축소판 같다. 늦을까 종종거리며 남북을 오가며 차를 갈아 타고 우리 생의 복판을 흐르는 강을 따라 한강 다리를 건너고 서너번씩 신호등 앞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며 건널목을 건넌다. 잠시 주춤거리며 서 있을 적엔 날마다 다니는 노선도 재차 확인하며 출퇴근 하는 많은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고 개찰구를 빠져 나갈때야 나도 뒤쳐지지 않고 무리속에서 동행한다는 안심을 하기도 한다.
병목지점을 빠져 나와서 자유로란 이름이 막힘이 없듯이 그 길에 들어서서는 날개를 단 듯 버스는 고속 주행을 한다. 하지만 그 길도 정체시엔 꼼짝없이 거북이 걸음이다. 강을 따라 아른거리는 불빛과 낯선 야경에 정신을 놓은 사이 버스는 신도시를 들어서려 한다. 벌판 한 가운데 마천루처럼 솟은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들어 오고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오피스텔의 야광판이 길 안내를 한다. 신도시가 입주하면서부터 그 입구엔 화원들이 줄지어 들어 섰다. 길가로 늘어선 비닐하우스의 꽃집엔 빛 고운 서양란과 관목들이 철철이 계절을 알리는 꽃들과 같이 즐비하다. 봄이면 꽃 모종과 봄을 알리는 영산홍같은 화려한 꽃들이 인사를 하고 여름이 가까와 오면 푸룻한 야채의 모종부터 야생화도 많고 가을바람 선선해지면 노란 국화가 마당 가득하다. 그 꽃길을 들어서면 우리집이 가까와 오는 낯익음에 졸던 선잠도 깨고 마음이 가볍다. 아마도 길을 오가며 나는 마음으로 수많은 꽃 모종의 화분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 갔을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꽃집에 핀 꽃을 보면 반겨 줄 가족의 얼굴이 꽃으로 피어나고 고단했던 내 마음도 꽃이 되고 싶어졌다.
날마다 돌아 갈 집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존재의 증명이 되는 것 같다. 그 곳이 어디든 마음이 쉴 수 있어 평온하고 행복하다면 한 생의 삶의 가치는 만족스러운 것일 거다. 성장하면서 둥지를 떠나서 내가 다시 새 둥지를 틀고 산다는 것에 두려움도 많았다. 가끔은 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집들의 불켜진 창을 보며 그 어느 한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산다는 것에 신기함도 느낄 때가 있다. 안주한다는 것은 많은 낯설음에서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새로 이사를 하거나 모르던 사람과 짝을 이뤄 살면서 그 낯설음을 지우며 서로가 서로에게 돌아갈 집을 짓는 것이 마음의 정착지는 아닐까. 나도 지금의 보금자리에 안착하기까지 세상이 많이 낯설었다. 그 낯설음에 자주 떠나고 돌아오는 방황도 하며 많은 시간을 탕진하기도 했다. 어린 날 학교에서 돌아 오면 늘 우리 집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문이 열려져 있는 날은 누군가가 나를 반겨주고 집안의 온기가 살아 있어 저만치서도 열려진 문을 보면 마음이 하늘같이 환했다.
집은 단순히 내가 주거한다는 주소지로서는 그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 가족에서 분리되어 핵가족을 이루고 사는 지금, 점점 가족이란 개념도 해체될만큼 개인적이 되거나 가정내에서도 서로가 바쁘게 각자의 일상으로 삭막해져 가는 실정이다. 엄마의 손길에 길들여진 입맛도 형제 자매의 살냄새도 모르고 자신의 정체성마져 희미해져 간다. 그러한 변화들이 얼마나 쓸쓸하고 고독한가. 현관을 들어서면서 느껴지는 그 가족의 온기와 향기, 저녁을 준비하는 그 집만의 음식냄새는 모든 삶의 노곤함이 사라지는 생기있는 허브나무다. 그런데 생활의 통풍이 끊어져 죽어가는 식물처럼 현대는 점점 고갈되고 박제화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난 오늘도 우리집 창문이 가까와 오는 익숙한 길을 찾아 간다. 아파트 숲에 돋아난 달과 겨울 하늘이 청명하니 밝다. 비록 작고 누추하지만 따스하고 안온한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늑하다는 말은 얼마나 정겨운가!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이다. 돌고 도는 세월이라지만 올 한 해의 끝에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음에 기쁘다. 다시 내일 해가 뜨면 집을 나서지만 나는 행복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기꺼이 추운 길을 가리라.
2005.12.10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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