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모니카
가을소리들이 깊어져가고 있다 바람이 불적마다 억새 서걱이는 소리가 스산하고 낙엽 휩쓸리는 소리가 비 스치듯 들려온다 아침길엔 낙엽 쓰는 소리가 가지런히 들려 돌아보면 비질한 자리가 빗살무늬로 환하다 그 가을의 먼 외곽에서부터 젖어오는 소리중 하나가 낮은 한숨소리 같은 가을 하모니카 소리다 그 소린 간헐적인 여음으로 가을 감성을 자극하지요
대금이나 안데스 산맥 인디오의 악기인 산뽀냐와 께나의 소리도 이 가을이면 폐부를 울리는 애절하고 마른 소리로 공명하지만 작은 금속성의 하모니카라는 악기가 불어주는 풍부한 음계는 끊어질듯 이어지며 연주자의 아름다운 숨소리를 들려준다 그 아련하고 감미로운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잊혀진 향수에 젖거나 유년의 언덕에서 동심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때론 마음의 고향을 그리게 하는 묘한 망향가처럼 울려와 가을의 중심에서 듣는 하모니카는 멜랑꼬리하게 한다
얼마전 "가을속으로, 음악속으로" 란 어느 음악회에서 전재덕씨의 하모니카 연주가 시작되면서 가을을 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연주자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하모니카로 아름다운 음악을 노래했다 하모니카는 악보가 존재하지 않는 것같은 자유로운 변주로 바람같고 물소리같고 자연의 소리가 되어 너른 벌판의 맥박소리가 되어 감전 되어갔다
자유로운 음악을 하기 위해 하모니카를 연주한다고 말한 전재덕씨는 누구보다도 영혼이 자유로워 보였다 들숨날숨을 반복하며 불어대는 호흡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하모니카의 젖은 소리는 부는 사람의 속삭임은 아닐까 똑똑 떨어지는 건반악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악기와 달리 하모니카는 조금의 박자나 음계가 길거나 짧아져도 크게 흠이 되어질 것 같지 않은 넉넉함이 체온처럼 따스한 온기로 전해져 오는 울림을 갖고 있다
올려진 곡은 휴식기간에 제 감성을 다독여준 지인의 블러그에서 가져온 "SONG OF HARMONICA" 란 곡입니다 전 이 곡을 들으면서 이렇게 추억을 노래했습니다
오래 전 타국에서 혼자있을 때 하모니카가 불고 싶어서 은빛 하모니카를 사 놓고는 늘 바라만 보다 바람소리만 들었습니다
지금은 머리맡에서 멀어진 해묵은 괘짝속에서 하모니카는 추억의 진공관처럼 삭아갈 겁니다
등을 보이는 세월의 그림자가 가을속으로 점점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난 저 하모니카의 소리처럼 잦아진 호흡으로 속울음 울고 싶은데 마른 가슴입니다
추적거리며 가을비가 내릴적마다 낙엽지듯 기온은 뚝뚝 떨어져 가고 시시때때로 단풍은 붉어져 가을옷을 갈아 입습니다 시월이 깊어질수록 세월도 저물어 옛 추억이 그리운지 동창회가 이어지는 요즘입니다 지긋이 눈을 감고 노을처럼 아련한 서정의 하모니카 소릴 들으며 혹여 잊었던 옛 벗의 안부를 묻거나 향수에 젖어 가을 하모니카의 선율을 꿈꿔 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추억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불어 보세요 어떤 소리가 나는지요
2005. 10.19 일.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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