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여름 꽃밭의 추억

먼 숲 2007. 1. 26. 08:03
 

 


 

 

 

 

 

                                

 

                                             <겹삼잎국화> <이꽃을 우린 키장다리꽃이라 불렀지요>

 

 

 

봄엔 나무에 꽃이 많이 피고
여름엔 땅에 꽃들이 많이 핍니다.
엊그제로 자귀나무꽃이 시들어 민들레 홀씨처럼 날리더군요.
분홍색으로 새 깃털같은 꽃이 신비로워
여름이 되면 자귀나무 그늘에 서서 가벼운 새 소릴 듣습니다.

칭월이 되면 들에도 여름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지만
무성하게 자란 덩굴과 잡목에 치여서

풀숲에 가려진 은은한 향기와 꽃빛을 지나치기 쉽지요.

 

달 뜨는 저녁과 이슬내린 새벽 냇가를 따라 걷노라면
달맞이꽃이 한 길이나 자라 층층으로 환하게 꽃을 피우고
땡볕이 쏟아지는 행길가나 밭둑엔 개망초꽃이 하얗습니다
웅덩이나 습지를 둘러 싼 가장자리나 물가엔
연분홍 여뀌와 고마리, 물봉선이 작은 꽃숲을 이루고 

코발트빛의 푸른 달개비가 촘촘히 작은 별처럼 꽃을 피우고 있지요.

 

산그늘을 벗어나 양지바른 산등성이엔

하늘나리가 날아갈 듯 피어나고
노오란 원추리꽃이 군집을 이루어 갑니다.
산아래 거름진 곳엔 보라빛 엉겅퀴가

꽃술 가득 끈끈이와 따가운 까시를 달고
낯선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 때쯤이면 집 둘레에도 오뉴월에 모종한 여름꽃이

시시때때로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나팔꽃이 창틀에 맨 줄을 따라 조석으로 피고 지고
화단엔 앞에서부터 키 순서대로
채송화, 봉숭화, 맨드라미, 분꽃, 과꽃, 나비꽃, 접시꽃이
제각각 색색으로 원색의 꽃빛을 자랑하며 피고지며
담벼락 응달가론 연보라색 비비추나 하얀 옥잠화와
잎이 죽고서야 피는 상사화, 백합이 여름을 화려하게 수 놓았지요.

 

 

 

 

 

 

 

 

 

 

 

 

 

 

 

 

 

 

 

 

 

<다알리아> <지금도 여름이면 저 꽃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여름꽃중에서 글라디오러스나 칸나, 다알리아는
그 서양 이름처럼 시골에서는 흔하지 않았지만
화려하고 정열적이라  그 꽃이 있는 꽃밭은  

대개 양옥집이거나 그래도 마을 부잣집이였습니다. 

이렇게 여름꽃은 하루하루 해바라기를 하며 피었다 지는 반복을 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까지 줄기차게

꽃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생명의 존재를 알렸지요.


그런데 저는 유독 이 여름이면 생각나는 꽃이 있습니다.
"키장다리 꽃"
꽃은 노오란 다알리아처럼 피는데 키가 큰 것은 어른키 만하게 자라
키장다리꽃이라 불렀는데 정확히 맞는지 모르지만

꽃사진을 찾느라 한참을 헤메다 보니 "겹삼입국화"라 하는군요.
칠월이면 우리집 헛간 옆에 많이 피었는데
술래잡기 할 적엔 나는 그 큰 장다리꽃속에 곧잘 나비처럼 숨어버렸지요.
꽃냄새가 쓰고 향기롭지 않았지만 워낙 키가 크고 무성하게 자라

해저녁까지 찾지 못하는 은신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어느집이나 집 앞이나  울타리,

장독대옆이나 마당가에 봉당만한 꽃밭이 있었지요

가난한 집이든 부잣집이든간에 우리의 누이들은 꽃을 심고 가꿔

봄부터 가을까지 무시로 꽃이 피고 졌습니다.

어쩌면 자신을 가꾸는 것처럼 가난한 누이들은 여름꽃밭을 꾸미며

손톱에 봉숭아꽃 물들이듯 사랑을 키워왔을 겁니다.

꽃을 심던 누이들이 그리운것처럼 그 시절의 여름꽃이 그립습니다.

지금 그 누이들은 모두 시든꽃처럼 늙어갔지만

제 마음에선 모두 저 화려한 여름꽃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젠 손바닥만한 꽃밭도 없는

일렬로 늘어 선 화분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어

한여름을 수놓았던 서정의 꽃밭도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오직 유년의 뜰에서 피고지는 꽃밭이지만

누이의 수틀처럼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꽃들입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여름.
여전히 마음은 옛집의 향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마당 가운데 시원한 파초나 서너 포기 심고
마당엔 촉촉히 물을 뿌린 다음 솔향기가 전해오는 들창을 열고
대청마루에 누워 오수에 들고 싶습니다.

 

 

2005. 7. 18일  먼   숲.

<오래전에 �던 글을 수정해 올렸습니다.>

 

 

           

            <풍접화> <우린 이꽃을 나비처럼 보여선지 나비꽃이라 불렀지요>

 

            ■ 사진자료 "들뫼곳간"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