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 2007. 1. 26. 08:00
 

 


 

 

        『 HeartStrings 』  

 

 

내 마음의 현은 어떤 소리를 낼까? 이젠 스스로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도 알고 가슴 속을 울리는 내 노래를 부를 줄도 알아야 할 만큼 마음의 공명통이 커진 세월이지만 아직은 내 삶의 악보도 그리지 못해 텅 빈 속은 지나는 바람소리로 황량하기만 하다. 『 내 마음의  현絃』. 되뇌일수록 울울해진 산그늘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유월이 깊어진 날의 저녁, 가까운 거리의 "고양 어울림극장" 공연장에서 일본의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새로 나온 음반『HeartStrings』발매 기념으로 『 마음의 현 』이란 이름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유키 구라모토는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에이지 음악의 선두주자이기도 하지만 그의 감미로운 피아노 곡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에 어울리는지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선지 그의 공연은 늘 매진이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고 했다. 지금은 TV 연속극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여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이천년대 초 나는 그의 피아노곡을 처음 듣고 감미로운 선율에 매혹되어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이면 회사 근처의 큰 레코드 가게에서 들어보기 음악으로 새롭게 올려진 유키구라모토의 싱그런 음악을 들으며 조여진 넥타이를 풀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잊기도 했다. 그렇게 그의 음악은 마음의 안정제처럼 편안하게 다가왔다. 뉴에이지 음악은 시끄러운 비트가 없는 서정성 깊은 음악, 동양적 명상음악이라 할만큼 가볍고 부드러워 무공해 음악이라고까지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전과 다르게 달콤한 뉴에이지 음악이 편해졌다. 

 

 

 

 

오래전부터 음악듣기를 좋아했던 나는 근래엔 아침 저녁으로 버스속에서 잠시나마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하루의 일상중 음악을 따로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으니 음악을 사랑한 내겐 그 짧은 틈새의 시간이 솜사탕같은 휴식인지도 모른다. 피로가 쌓이거나 노곤한 시간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은 청량한 공기이며 피로회복제였다. 출근길엔 날마다 "출발 FM과 함께" 라는 음악프로를 듣는다. 그 프로에선 고전음악에 대한 해설과 함께 음악퀴즈를 내고 추첨된 사람에겐 공연 티켓이나 씨디를 선물 하기도 한다. 가끔 가고 싶은 음악회가 있어 참여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상 그만두곤 했는데 이번엔 유키 구라모토의 공연티켓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공연 장소가 집과 가까와 부담없이 아내와 꼭 같이 가고 싶었다. 결국 욕심을 부려 두 번째 퀴즈 정답 맞추기 도전으로 공연 티켓을 받는 행운을 얻고 그 날이 오길 설레이며 기다렸다. 공연장은 빈 자리가 없이 청중이 들어찼다. 오프닝 신호가 있고 멋진 대머리의 유키 구라모토가 반가운 얼굴로 나타났다. 새까만 연미복이 아닌 회갈색 슈트 차림의 그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숙하고 편안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속에서 그는 서툴지만 조분조분하고 부드러운 우리말로 자신을 소개하며 음악회의 진행까지 하여 더욱 가까와진 마음의 거리에서 그의 서정어린 연주를 보고 듣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그 날 공연장 제일 로얄석에서 피아노와 마주보며 모처럼 물기어린 선율에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1부 첫 곡은 "Meditation"과 "Sonenet of Fountain"이 『The1st』스트링 앙상블의 부드러운 현의 선율과 어울려 꿈결같은 서정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의 피아노 선율을 듣고 있으면 그림에서 본 스위스나 캐나다의 아름다운 호반위에서 내가 백조처럼 떠 있는 평화로움을 느낀다. 물 그림자로 비치는 여름산의 잔영이 깊고 고요롭다. 고음의 피아노 건반을 스칠때마다 호수의 파문은 둥근 물무늬를 그리며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물새가 날아간 허공은 별빛이 눈부시다. 영롱한 이슬을 털며 오솔길을 걷노라면 새벽 안개가 호수를 감싸고 나는 유월의 푸른 숲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명상적인 피아노 선율은 청중을 연주장이 아닌 자연의 숲과 서정의 바다 위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는 여유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몇곡의 협연이 끝나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피아노와 첼로만 하나씩 남아 연주한 피아노 트리오의 선명하고 부드러운 화음도 좋았지만  그가 혼자 연주한 피아노의 솔로 곡은 내밀하고 영롱한 심상의 표현이기도 했다. 또한 높고 낮은 음의 반복의 변주는 자신과의 섬세한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색다른 분위기라고 설명한 "Cottage for the Rabbit"는 정말 생동감 있는 연주였다. 귀여운 토끼가 깡총깡총 푸른 초원을 뛰어가다가 멈춰서 핼끔거리며 뒤를 돌아보는 동작을 아주 세밀하게 그린 그림처럼 나타내기도 했다. 토끼의 경쾌한 동작이 반복적으로 피아노의 건반위에서 동그란 발자국을 찍듯 동심으로 그려내는 유키 구라모토의 연주는 참 인상적이였다.

 

 

 

 

휴식이 끝나고 2부에서는 "Various Kind of Love" "Second Romance"등 그의 신곡들을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했다. 그의 서정적 멜로디가 깊은 현의 선율과 어우러져 심금을 울리며 낭만적인 여름밤으로 깊어갔다. 투명하고 가볍던 피아노의 울림이 산그늘처럼 내리는 현의 선율을 따라 애수와 침잠의 호숫가로 메아리처럼 퍼져가며 애잔한 슬픔이 물들어 갔다. 막을 내릴 줄모르며 박수와 앵콜의 합창이 쏟아지고 한참을 여러곡으로 답례를 하는 그는 "섬집아기" 동요까지 준비하는 섬세함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두시간 가까이 아름다운 음악에 젖다보니 2부에서는 많은 새 작품이 비슷비슷한 멜로디의 반복처럼 느껴져 새로운 곡이란 느낌마져 둔해졌다. 그의 연주하는 모습은 열정적이 아닌 선하고 밝았다. 부드러운 감성을 엮어 낸 그의 음악은 평화로운 자연과 사랑을 바탕으로 건조해지고 조급해지는 현대인들에게 촉촉히 젖어드는 자연의 향기와 느리게 번져오는 여명처럼 편안한 마음의 휴식을 전해 주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꽃처럼 환하다. 음악회는 끝났지만 나는 아직도 호숫가 잔잔한 수평선 위에서 구름처럼 떠 있다. 유월의 숲은 어둠으로 사라지고 음악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악기의 한 몸에서도 줄이나 건반에 따라 여러 소리가 나듯 한 집에서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도 다른 음이 나거나 공명통의 소릴 듣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내와 나는  모처럼 음악이라는 매체로 공감하면서 조금이나마 좋은 화음의 소리가 나도록 마음의 조율을 했는지 모른다. 『 내 마음의 현 』. 소리는 내지 못해도 풀어져 있고 싶진 않다

 

 

 

 

2005.6.25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