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초록의 차밭을 찾아 나서는 나그네

먼 숲 2007. 1. 26. 07:57
 
 
 

 

 

 

 

 

 

 

 

 


 

                

곡우가 지나고 잎새들의 푸르름이
바라보는 시각과 시간을 따라 그 짙어짐이 더해갑니다.
자고 나면 느티나무 그늘이 더욱 어둡고
푸른색으로 변하는 신록의 길을 갑니다.

출근하면서 학교 울타릴 지나칠 적마다
쥐똥나무 울타리가 새 순이 뻗어 한치 틈도 보이지 않게
속속들이 초록의 잎이 들어차고 있었습니다.
이발소를 방금 나선 상고머리의 단정함처럼 전지 된
긴 나무 울타리를 아침햇살을 따라 걸으니
마음으로만 그리던 지리산 산자락이나 보성 차밭이 그리워집니다.

 

초록의 물결이 층층이 이랑을 이루는 사진을 보거나
차밭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수녀와 비구니 스님의
싱그런 만남이 인상적인 광고장면을 스칠 적마다
언젠가는 온통 푸르름의 물결인 차밭을 가보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얼마 전 곡우를 지나고 나서부터 여린 우듬지의 새순은
새부리처럼 날렵한 유선형의 잎을 피워내며
윤기가 반드르르하게 빛나고 아직 잎맥마저 보이지 않는
연녹색의 연하디 연한 살빛이였습니다.


오늘 아침 솟은 새침한 웃잎을 따서 비벼보니
아주 비릿한 풀냄새가 나고 녹색의 엽록소가 손에 묻어났습니다

곡우를 지난 날부터 삭막한 아파트 단지를 초록의 띠로 두르고 있는
저 쥐똥나무 울타리를 따라 걸으며 그 나무 이름과 상반된
향기롭고 고상한 차나무를 생각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초록의 낮은 숲과 차나무의 향기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홍차의 나라 먼 남국의 실론을 기억해 내었고
인도의 북쪽 높은 히말라야의 산기슭 다질링을 그리워했습니다.

 

하얀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 높은 산줄기를 따라
가파른 산기슭을 찾아 먼지 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아득한 산모롱이를 숨 가쁘게 오르는
신령스런 산의 주름처럼 펼쳐저 있을 차밭의 고향
다질링을 꿈결처럼 그리워했습니다.

인도양의 농무가 푸른 산을 넘는 안개의 골짜기마다
초록의 차밭이 파도처럼 일렁일 것 같은 환상을 꿈꾸기도 하고
밀집모자를 쓰고 안개비 오는 아침길을 따라 아련하게
차밭에서 풍겨오는 나무냄새에 마음을 씻어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록이 푸르러지는 오월이 가까워 오면
평소 즐기지도 않던 녹차의 향기가 마음에 이슬처럼 맺히고
차밭이 있는 남쪽의 먼 나라들이 생각났습니다.
순간 마음 한켠의 포구에선 흰 돛을 올리고 순풍을 따라
방랑의 항해를 떠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남해와 멀리 떨어진 이 먼지나는 거리에서 차나무 대신
아침햇살에 저 쥐똥나무 새 순을 따서 찻잎처럼 덖으면
연두빛 말간 차맛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초록의 울타리를 지날 적마다 골 깊은 지리산 자락과
남해의 두륜산 자락을 그리워하며 그 먼 이국의 산자락까지
마음에 겹겹으로 싱그런 차밭의 푸른 이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기울어 가는 세월을 지나는면서 나그네처럼
이렇게 화창한 봄이면 이슬 내린 보성 차밭길을
느린 자전거를 타고 햇살처럼 부서지며 내달립니다.
그리고 아주 먼 희말라야의 다질링과 인도양의 한가운데의 섬
실론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오만한 고개를 꺾고
소쿠리 가득 어린 차잎을 따서 담고 있었습니다.

난 아직 우전차나 작설차의 참 맛을 모릅니다.
설령 마신다 해도 어둔 속세에서 여유 없이 마신다면
그 무슨 고요한 정취를 느낄 수 있을까요.
조급함과 게으름에 길들여진 자세로 들이킨다면
그 무슨 정갈한 향취를 느낄 수 있을까요.

 

적어도 솔바람향기가 나는 절간 선방이나
아니면 복사꽃 이울어 마당에 날리는 대청마루에서
이슬 고인 샘물로 찻물을 다려 햇차의 향과
저 봄바람과 푸른 하늘이 담긴 맛을 은근하게 우려내어
그 향그런 우전차를 음미하고 싶었습니다.
우매한 욕심의 그늘에서 말의 사치인줄 알면서도
차 한잔에도 심상과 개안의 창을 열 수 있는
마음을 닦는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아직 신선처럼 마시는 작설차의 맛을 음미하기엔
제 마음의 얕은 내면이 떫고 시큼합니다.


마음을 씻어내지 못한 위장은 쓰고 달고 매운 자극에만 익숙하고
무향 무미의 깊은 맛을 감지 할 수 없습니다.
불평과 투정과 핑계에 익숙한 혀는
무색 무취의 정한 맛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차밭을 향한  나그네의 막연한 상념은

먼 산골의 뻐꾸기 울음처럼 메아리 질 뿐이고
지금 향긋한 얼그레이의 홍차가 생각나는 도시의 나른한 오후입니다.
그래도 마음은 질리고 싶도록 초록의 풀물이 들어
자꾸 이슬 내린 산섶에서 서성입니다.

어디선가 찻물 다리는 소리가 솔바람처럼 들려 오고
흰 눈처럼 배꽃이 우수수 져 내립니다.


2001.4.27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