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남행열차를 타다

먼 숲 2007. 1. 26. 07:49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추위를 피해  불현듯 남행열차를 탔다. 희망을  찾아 떠나는 피난민처럼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면   봄이 와 있을 것 같아 부풀은 마음으로 남쪽 끝으로 갔지만 파도는 봄 볓처럼 잔잔한데 칼 선 바람은 거기까지 와 있어 코 끝이 매웠다. 철 지난 바다의 시야는 넓고 창망했다. 바람부는 겨울 해안을 돌아 따뜻한 남쪽나라를 꿈꾸며 동백섬에 닿으니 봄이라는 빨간꽃, 동백이 피어 있었다. 윤기나는 상록수의 잎으로 꽁꽁 언 마음 한자락을 들춰 보았다. 동백꽃속에서 해빙의 물소리가 들린다.

 

 

양지바른 유엔 묘지를 거닐다 문화회관 뒷길을 돌아 찻집 "천년의 미소"로 들어섰다. 봄이라는 노란꽃, 수선화가 탁자위에 피어 있었다. 꽃향기를 당겨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열렸다. 찻집은 유물처럼 버려졌던 내 추억의 단편들이 재현된 무대같다. 베에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스프링"이 듣고 싶어 레코드판을 뒤지다 턴 테이블에 베에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올리고 다즐링을 마시니 무르익은 현의 울림을 타고 마음은 푸른 설산에 오른다. 시들은 꽃들이 모여 30년 전 봄을 얘기 한다. 우리의 봄은 만년설같이 거기 있는데 벽에 걸려진 골동품의 나이처럼 칙칙한 세월의 골목길에서 서성댄다. 아직 악장이 다 끝나지 않은 늦은 오후, 새 손님이 들어오고 우린 자릴 일어선다. 작별인사 대신 수선화의 향기를 메모리 한다.

 

 

잃어버린 봄은 없었다. 봄은 가고 오고 했을 뿐이다. 오고 간 봄날의 주름살을 잊고 되돌린 세월의 얘기속에서 수선화의 꽃향기가 났다. 스물네시간 프레스 기계에 매달려 똑 같은 하루를 찍어 내고 사출기계 옆에서 반복된 일상을 끄집어 내며 기름때에 찌든 봄이 갔지만 가난하지 않게 사장이 된 그들의 봄은 밝고 환했다. 밖엔 아직 해풍이 꽃샘추위로 차갑지만 우리들의 봄은 따스했다. 어언 푸른 세월은 수평선처럼 멀어졌고 나는 때때로 그 자리에 서 있곤 했다. 돌아 오는 밤기차가 중부지방을 지날 때 대설 주의보속에 창 밖엔 흰 눈이 내린다. 간간이 지나치는 역사엔 햐얗게 쌓인 눈을 쓸고 있었다. 어둠속에 드러나는 雪原이 철로를 따라 이어진다. 무작정 이름모를 간이역에서 내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을 숨기며 내얼굴이 얼비치는 차창을 내다만 본다. 남쪽에서 떠나지 못한 마음의 차창엔 아직 빨간꽃 노란꽃이 어른거린다. 쪽빛 바다의 물빛에 봄이 어려 있었다.

 

 

 

 


                  2005. 2.1일.  먼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