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들꽃과 만나는 가을길의 抒情

먼 숲 2007. 1. 26. 07:35

 

 

 

 

 

 

寒露를 앞둔 산골의 계곡은 벼베기가 한창이였다.
바둑판처럼 정리된 논이 아닌 층층으로 이어진
다랭이 논의 추수는 기계손이 덜 간 정겨운 모습이다.
낫으로 서너포기씩 베어 작은 볏단이 되도록
한묶움씩 가지런하게 접어논 노오란 벼들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었다.
당장 맨발로 논에 들어가 사각거리는 벼를 베어 내고 싶었다.

계곡을 오르며 가파르게 비탈진 능선이 모두 밤나무이지만
이미 빈 밤송이만 고슴도치처럼 널려져 있고 바람에 스친 알밤은 찾기 힘들었다.
숲 가장자리로 연보랏빛 쑥부쟁이가 산을 둘러싸고 환하게 피어
가을향기로 하늘과 햇살과 함께 미소짓고 있었다.

절길로 오르는 계곡은 조금씩 단풍이 들어가고
옴나무인 화살나무과 종류는 제일 먼저 가을의 전령사처럼 붉게 단풍이 들었다.
한 두집씩 스치는 마당가엔 맨드라미 ,다알리아,과꽃, 나비꽃이
까맣게 씨를 여물리며 짙은 색조화장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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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담> 아래 <꽃향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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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곡은 수량이 풍부해선지 물길을 따른 습지엔
여뀌, 물봉선,고마리꽃이 논두렁과 길섶으로 뒤덮여 들꽃의 세상이였다.
오늘 햇살이 환한 마른 길가에서 처음 만난 꽃이 있었다.
아니 언젠가 만난적이 있었겠지만 무관심하게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꽃의 이름을 불러줌으로 해서 그 꽃의 의미가 살아나듯이
들꽃은 뭇사람의 눈길에서 멀어진 꽃들이 많았다.
그 꽃은 꽃향유라는 들꽃이였는데 선명한 꽃자주빛으로
은은한 향기가 일품이였다.

묘한 적막감이 절마당에 산그림자로 어룽지고 산국의 향기가 그윽하다.
풍경소리가 멎은 추녀엔 꿀벌만 잉잉거렸다.
석탑 아래 요사채엔 툇마루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가
모두 단청이 칠해지지 않아 나뭇결이 고풍스럽게  퇴색한 채

먼 세월의 추녀끝에서 만난 자연스러운 옛집처럼 정겨워
툇마루에 마냥 앉아 무너져 내릴듯한 가을산만 바라 보았다.

요사채를 옆으로 초당처럼 빈 집이 있고 그 앞엔
아담한 연못이 있어 이미 씨를 맺은 창포가 너울거리고

꽃도 없이 수련 몇포기가 한가로이 떠 있었다.
그 잎의 둥근 파장이 마음에 번져와 하늘빛 물무늬가 아롱진다.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사각으로 자리한
절주변엔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어
전나무 숲에 가려진 적막함을 물소리가 달래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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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리> 아래 <물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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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계곡을 따라 가니 통행이 금지된 林道도가 있었고
그 길을 몰래 벗어나니 산과 구름이 조우하는 무인지경의 계곡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데리고 들꽃이 흐드러진 산길을 오르는 비탈길에
누군가 먼저간 사람의 발자국이 반가웠다.

누구일까, 청보랏빛 용담을 꺾어 그 푸른 꽃숭어리를
산을 넘는 자갈길 언덕에 뿌려놓은 나그네는.
그도 나처럼 가을이면 저 청보랏빛 용담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일까?
산그림자와 햇살의 대비로 일렁이며 언덕은 자꾸 나를 유혹했다.
저 언덕을 넘으면 행복이 있을거라고...

잠시 환각처럼 떠나가는 방랑의 유혹을
저만치 아래에서 아이들이 불러내렸다.
아! 알수없이 밀물져 몰려오는 그리움의 유혹을
저 언덕을 넘는 뭉게구름에 실어보내면서
단풍으로 저무는 가을 산길을 내려오는 아쉬움.



2001.10.8일 추억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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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아래 <벌개미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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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자료 : 들꽃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