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숲에서 오솔길까지

여름날의 풍경 |

먼 숲 2007. 1. 26. 07:27

 

 

 

 

 

불가마솥같이 후끈한 더위가 밤이 되어도 식을 줄 모르는 열대야로 남아

달궈진 시멘트 벽의 열기속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지쳐가는 오후입니다.
선풍기에선 더운 열바람이 훅훅 덮쳐오자

멀리했던 에어콘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젊은날 사막의 나라 중동에서 불볕 더위속에서
몇년을 사시사철 에어콘 바람속에 살다보니
어깨가 시리고 호흡기도 좋지 않은 것 같아 싫어했고

맨살에 부딪치는 기계적인 찬바람이 많이 거슬렸지요.
복중에도 여기 아파트 숲은 탁 트인 편이라

거실문과 배란다 문을 마주 열으면 맞바람이 쳐서
대충 여름을 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등줄기로 비지땀이 흐르고
서늘함을 찾아 볼 수 없이 아파트 사방에서 열기를 느끼자
불현듯 옛 시골집이 그리웠지요.
마루 가운데 뒷문을 열면 푸르게 쏟아져 내리는

울창한 참나무 숲의 녹음과 산그림자,
뒷밭 고욤나무 잎새 뒤에서 울어제끼는 시원한 매미 소리.
매끄럽게 길들여진 차거운 마루 바닥에 등을 눕히면
서늘하게 느껴져 오는 시원함에 스르르 낮잠이 오던 늙은 마루.


그렇게 누워 있으면 이끼 긴 봉당가에서 풍겨오는 축축하고 습한 흙냄새.
쥐오줌처럼 눅눅하게 젖은 그 여름의 추억이
깊은 추녀의 그늘처럼 내 마음의 언덕에 드리워집니다.
어느새 나는 좁은 툇마루를 지나 어둔 들창을 열고

산들바람 들이치는 대청마루에 대자로 누워 있습니다.
창을 통해 불어오는 뒷산의 숲냄새와 결고운 마루의 냄새가 더운 머릴 식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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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누워있다 보면 삐걱거리는 마루 틈 새로 가끔 빠져 있는 동전이 보여

마치 동굴속 탐사를 하듯 캄캄한 마루속을 기어 들어갔었는데 

그 때의 서늘함이란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이였지요.
그 속엔 무언가 숨겨져 있는 우리집의 과거나 전설이

거미줄처럼 엉겨 숨어 있을 것 같았고
간혹 오래된 고물이나 찢어진 고무신이 집혀질 땐 질겁을 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포복을 하고 기어 나올적에 그 축축한 땅의 습기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오래도록 서늘하게 남아 있었지요.

종일 들녘에 불볕이 쏟아지면
앞마당을 정갈하게 비질을 해 놓고 시원하게 물을 뿌리고 나면
바닷가의 뽀얀 모래 해변같았지요.
큰 마당의 가장자리론 댑싸리가 탐스러운 정원수처럼 커져 있었고
그 사이 사이 봉숭아와 과꽃이 한창이였지요.
분꽃과 나팔꽃은 시들어 입을 꼭 다물고 있었고
다알리아도 해바라기도 모두 늘어진 꽃잎으로 헐떡였지만
모두 둥근 얼굴에 시계바늘을 달고 있는 듯
해를 따라 그 모양새도 시시각각 변했지요.

자줏빛 까마중 열매가 무성한 거름진 샛길을 지나
개울가 옆 느티나무 그늘에 한가롭게 멍석이 깔려진 마을의 쉼터가 그립습니다.
느리게 부채질을 하고 앉아 초록의 들판을 바라보며
한담을 즐기던 여유로운 여름의 오후가 그립습니다.

왜 사는 게 이리 감옥살이처럼 닫혀져 버렸을까요?
메카니즘의 건조함과 편함에만 길들여져 가는 현대인은
숨구멍, 땀구멍.마음구멍 까지 모든 열려진 배출구를

리모콘으로 조절하며 아예 그 기능을 약화 시키거나 무력화 시키고
언제부턴지 소중한 땀을 모르고 사나 봅니다.
자연스런 흐름의 편안함과 여유롭게 바라보는 느긋함과
땀을 흘린 뒤의 개운함과 그 시원함을 모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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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가져오는 그 변화를 자연속에서 치유하려는 지혜보단
피하고 거부하려는 인위적인 행위들이
자꾸 공존하는 자연과의 거리를 멀게하고 적응치 못하게 합니다.
이런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서

이젠 오히려 원시적인 지난날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어느새 멀리 떠나 온 고향의 옛 길을 더듬어
키를 자란 청청한 억새 풀숲을 지나면
노란 꾀꼬리 버섯이나 기와 버섯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살을 베이는 그 풀섶을 스치면
그 여름의 기억들이 버섯처럼 솟아 있을까요?
그러나 종균처럼 번져있는 새록새록한 그 추억들이
아침마다 다시 솟아나지 못하고 다시는 번식할 수 없는
마른 포자가 되어가고 맙니다.

세월은 푸른 이끼가 돋아나 늙어가고 허무하게
우리가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아쉬움 뿐인 데
그런 세월의 흐름은 예전에도 그러하였던 것처럼
피할 수 없이 언제나 돌고 도는 시간의 물레방아였을까요?

열대야로 편안한 수면을 못 이루고
모두 훤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적나라하게 자신의 삶을 노출하는
아파트라는 공간에 갇혀 상대방을 바라만 보는
허물 수 없는 고립의 벽속에서 단잠을 설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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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 이불자락처럼 깔끄럽고 날 선 묵은 추억의 잠결을 설쳐댑니다.


2002.7.28일. 추억의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