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으로 흐르는 샛강
『 유년으로 흐르는 샛강 』
자주 내린 봄비가 오월의 강섶을 지나 초여름의 밀물이 되어 찰랑거린다. 한강이 가까와지면서 강물을 받아 내리는 수로가 바둑판처럼 펼쳐진 논 가운데 고속도로처럼 나 있다. 수로엔 모가지까지 차 오른 강물이 흐르고 둑을 따라 숲을 이룬 갈대의 무성한 그림자를 물속 깊이 반영하며 스스로 깊어져 가고 있다. 봄 가뭄이 해갈된 대지는 푸르름으로 넓어져 가고 모내기를 앞 둔 논배미마다 논물이 꼴깍 차 올라 살랑이는 바람에도 어지러운 물무늬를 그려내고 마치 염전처럼 써레질한 논두렁엔 왜가리 한 쌍이 거울처럼 환한 물 속을 탐색하고 있다. 初夏의 길목에서 노오란 미나리 아재비가 하늘거리는 수로의 물길을 따라가면 내 마음 속을 흐르던 강물이 있다. 이름도 없는 샛강이다.
일곱,여덟살쯤의 유년일거다. 모내기철 옆집 동무는 가끔 샛밥을 내가는 할머니를 따라 산을 넘고 먼 들판을 건너 벌논을 다녀왔다. 일찌기 농지정리가 되었던 한강 유역 벌판의 드넓은 논을 그 당시는 벌논이라 했고 대개 벌논을 소유한 집은 좁은 다랭이 논으로 연명하던 우리 마을에서 꽤나 부유한 집이였다. 가을이면 동산만한 볏가리가 서너개 쌓였고 그 집 사랑방엔 토지개량조합의 달력이 자랑스레 걸려 있었다. 소작농이 많던 그 때 사시사철 물걱정 없는 벌논은 부의 상징일수도 있었다. 벌논은 뒷 동산을 넘어 시오리 넘는 한강 아래 있어 강 건너 김포평야랑 이어져 있었고 저녁이면 붉은 노을이 그 너른 평야를 삼켜 버리면서 밤이 오곤 하는 서쪽 풍경의 끝에 있었다.
삼태기처럼 들어앉은 동네에서 기껏해야 올챙이, 우렁이나 잡고 놀던 봄날에 옆집 친구가 다녀와 얘기하는 벌판의 풍경은 먼 신세계의 나라였다. 고작 둠벙에서 물장구나 치는 또래에게 그는 샛강에서 미역감는 얘기며, 강물이 빠지면 팔뚝만한 잉어나 수염이 팔자로 난 힘 센 메기를 양동이로 잡는다기도 하고 가끔은 여기선 볼 수 없은 이쁜 강조개를 잡아 오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날에 강에 가면 억수로 많은 조개를 잡는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는 보지도 못한 보랏빛 자운영을 꺾어 오기도 했고, 그 애 누나가 따오는 토끼풀꽃은 우리동네에서 자란 꽃보다 키가 두배는 크고 하얀 꽃송이도 수국처럼 탐스러웠다. 더 부러운 건 아침 길을 떠난 그 애는 하루종일 먼 벌판에서 놀다가 해저녁이 되어서 일꾼들과 아카시아 핀 산고개를 넘어오는 일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고학년에 인천 작약도로 소풍을 가서 바다를 처음보기까지 내게 바다와 강은 낯설었고 바로 눈앞에 보는 한강도 바라만 보는 거리에선 멀고 아득한 흐름이였다. 그리고 분명 저 평야를 흐르는 강이름은 한강인데 샛강이란 또 다른 강은 어디있을까 하고 오래도록 궁금했던 문제가 지금의 넓은 수로였다는 건, 학교를 다니며 그 마을 아이들과 친해진 후였다. 저녁나절 산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면 바다처럼 넓게 흐르며 잔잔한 금빛 물살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름이면 홍수로 인해 벌판은 물바다가 되어 마을이 섬처럼 둥둥 떠 있기도 했고 물이 빠지기까지 둑방 아래 벌동네 사는 애들은 학교로 피난을 오거나 비 때문에 학교를 쉬기도 했다. 그리고 기껏 물장구나 치는 내게 개구리처럼 헤엄을 잘치는 벌마을 아이들은 내겐 여전히 낯선 바닷가 아이들 같았다.
낮은 산줄기를 따라 산길을 따라 오가며 보던 해가 지던 벌판의 마을이 오래도 미지의 땅이 되어 가깝고도 멀게 느껴짐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해가 지는 곳이라서였을 것이다. 난 자주 산에 올라 한강 넘어 산능선으로 석양이 지는 걸 오래도록 보며 막연하게 그 서쪽이 어딜까 하는 생각의 이어짐은 그 유년의 샛강에서 시작해 아마도 먼 서역의 나라나 유럽의 평원까지 끝없는 연장선의 여행이였는지도 모른다. 모시조개처럼 곱던 조개가 나는 강, 펄펄 살아서 튀어 오르는 잉어나 메기가 많은 강, 가끔 멱을 감다가 아이들이 빠져 죽는다는 그 깊고 무서운 강은 어딜까, 아침부터 해가질때까지 모내길 해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오는 바다처럼 넓은 그 벌판은 어딜까 하는 생각들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싶은 동경의 시작이였을 거다.
이제 그 샛강을 지나 바다처럼 넓기만 하던 한강 줄기를 날마다 오가며 바라본다. 그 옛날 푸른 초원에서 황금벌판으로 출렁이던 벌판은 거의 메워지고 아파트와 오피스텔 건물 숲이 들어섰고 어린 마음의 경계선을 긋고 넘을 수 없는 강처럼 흐르던 둑방길은 자유로란 이름으로 바다로 향한 유속보다 빠른 자동차의 물결이 또 다른 흐름의 강을 만든다. 자유의 날개를 달아 해가 지는 서쪽보다 더 먼 신세계를 꿈꾸게 했던 방랑의 물길은 한 때 먼 나라를 유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추억을 향한 그리움의 물결은 황해바다에도 이르지 못하고 한강하구에서 끝나고 먼 바다의 수평선처럼 가슴 울렁이게 한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 강물이되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물새들의 비상을 따라 강을 넘으려 하지만 추억의 모래톱에서 작은 발자욱을 찍고 만다. 어느듯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성하의 계절이 가까워 오고 물풀이 무성한 수로에 여름의 그림자 깊어지면 내 마음의 강줄기에서 샛강은 꿈꾸는 조개들이가 자란다. 유월의 수문을 열자 폭포처럼 등줄기 푸른 숭어떼가 거슬러 오른다. 내게 버들숲이 우거진 한강의 유역은 또 다른 鄕愁의 상류다.
2004. 5.30. 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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